김정일 위원장 조문과 조의 문제

2011.12.21 18:54:29

김승환

충북문화예술연구소장/충북대교수

국무총리가 조문을 갔다. 조문의 대상은 36년간 한반도를 수탈하고,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게 만들었으며, 이천 오백만 조선인 전체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국가의 원수(元首)였다. 1989년 강영훈 총리는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일본 히로히토 천왕의 빈소에서 정중한 예를 갖추어 조의를 표했다. 일제에 대한 적대감과 통분을 가지고 있는 한국인들이지만 이 조문을 잘못된 것이라고 비난하지 않았다. 5년 후인 1994년 남북 영수회담 직전에 조선의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다. 나라 전체가 조문과 조의를 놓고 격론을 벌였고, 정쟁이 격화되었으며 국가정체성과 이적행위(利敵行爲) 여부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결국 김영삼 정부는 공식적 조문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진보진영에서는 '그렇다면 왜 영수회담을 하려고 했느냐·'라고 거세게 비난했다.

이와 유사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거했다'라고 알려지자 격렬한 논쟁이 시작되었다. 조문단을 보내고 조의를 표해야 한다는 쪽과 반대로 죽은 것을 환영해야 하며 조문과 조의는 불가하다는 쪽으로 나뉘었다. 보수단체는 '수많은 북한 주민을 굶겨 죽인 그의 사망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천안함 격침, 연평도 포격사건을 일으킨 김정일이 죽은 것은 마치 앓던 이가 빠진 것과 같다', '민족의 국운이 튼 날이다. 통일이 가까워 온 것이다'라는 극단적 적개심과 사망환영이라는 개념으로 정리했다. 반면 진보진영에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거에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남북화해와 협력의 기본정신은 변함없이 이어져 가야 할 것이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급작스런 사망에 대해 한 민족의 일원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조의를 표합니다'라고 정리했다.

이 논쟁의 옳고 그름을 판정할 수 있는가· 없다. '조문을 해야 한다'와 '조문을 하지 않아야 한다'라는 결론을 끌어내는 대전제와 소전제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조문을 반대하는 보수진영의 논리는 이렇다. 대전제는 '적대세력의 수괴가 사망했다면 애도할 필요가 없다, 소전제는 조선은 한국의 적대세력으로 그 수괴가 사망했다, 셋째 그러므로 그 수괴의 사망을 애도할 필요가 없다. 반면 조문을 찬성하는 진보진영의 논리는 이렇다. 대전제는 한반도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서는 조선을 존중하고 조선과 협력해야 한다, 소전제는 그 협력해야 할 조선의 대표가 사망했다, 셋째 그러므로 그 대표의 사망을 애도해야 한다. 두 논증 모두 형식논리의 추론에 오류가 없으므로 타당한 결론이다.

이런 것을 흔히 딜레마(dilemma)라고 한다. 딜레마란 이렇게 하면 저것이 문제이고 저렇게 하면 이것이 문제라서 필연적으로 문제가 생기는 것을 말한다.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지만 피를 흘리더라도 한쪽의 뿔에 찔리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뿔잡기'라는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뿔잡기는 부정확한 논리형식인 딜레마에서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으므로 차라리 뿔을 잡는 것을 말한다. 하나의 뿔은 잡고 하나의 뿔에는 찔리는 것이 유일한 해결방법이다. 결국 이 사안은 어떤 것이 옳다고 할 수 없으며 어떤 것을 나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21세기의 한국인들은 어떤 뿔에 찔릴 것인가· 이 역시 표현의 자유에 맡겨야 하겠으나 일언이폐지(一言以蔽之)하자면 과거의 뿔에 찔리고 미래의 뿔을 잡는 것이 좋다. 과거의 뿔은 적대감, 복수, 원한, 증오, 대립, 갈등, 전쟁 등일 것이고 미래의 뿔은 화해, 협력, 공존, 평화, 사랑, 상생 등일 것이다. 21세기 한국이 잡아야 하는 미래의 뿔은 조선의 대표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에 정중한 조의를 표하는 것이다. 그것이 민족으로서의 예의이며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 이 형식논리의 타당한 추론과 민족통일 열망을 두고 종북세력이나 친북좌파라고 매카시적 비난을 한다면 그것은 표현의 자유마저 부정하는 사상의 독재(獨裁)다. 따라서 조문과 조의가 민족의 미래를 위하여 좋다는 논리추론을 '종북세력'과 같은 선정적인 언어로 비난하지 않는 열린사회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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