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스러웠던 여울, 한수 '황공탄'

2012.04.10 16:10:17

조혁연 대기자

여울은 하천 바닥이 경사를 이뤄 물흐름이 빠른 부분을 말한다. 백과사전은 보다 구체적으로 '일반적으로는 굵은 조약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물이 소리내어 흐른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 '여울이 형성되는 하천은 지형의 발달과정에서 볼 때 유년기(幼年期)에 속하며, 대륙의 구조평야를 흐르는 하천에서는 일반적으로 보기 드물다'라고 쓰고 있다.

조선말기 인물로 이유윤( 李裕元·1814~1888)이 있다. 그는 흥선대원군 이하응과 사사건건 대립했던 인물로, 대원군의 등장과 퇴진에 따라 좌천과 복권을 반복했다. 그는 고종초에 좌의정까지 올랐으나 흥선대원군과 반목하여 수원유수로 좌천됐다. 그러나 흥선대원군이 실각하자 영의정으로 승진했다.

그는 총재관 자격으로 조선의 마지막 법전인 대전회통 편찬을 주도했고, 대한제국기 전인 1882년 전권대신으로서 일본변리공사 하나부사(花房義質)와 제물포조약에 조인하기도 했다.

그는 다재다능해 조선의 역사, 지리, 시문, 제도 등을 다룬 '임하필기'(林下筆記)를 쓰기도 했다. 이 문집은 같은 시기 백과사전류인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와 종종 비교된다.

그는 이 문집에서 '호서(湖西)의 네 고을'이라는 소제목으로 우리고장의 청풍 금병산, 한수 황공탄, 단양 옥순봉, 영춘 성산(城山) 등 이른바 북부사군의 명승지를 간략히 언급했다. 황공탄이라는 여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황공탄(惶恐灘)은 상하의 두 여울로 되어 있는데 그 물의 바닥이 모두 반석(盤石)으로 되어 있고, 그 돌들 중에 마치 가마솥처럼 파인 것이 서너 곳이나 있는데 날이 가물면 이곳에 비가 내리기를 빈다고 한다.'-<임하필지>

황공탄은 지금은 자주 듣는 지명은 아니다. 그러나 황공탄은 불과 1세기 전까지만 해도 남한강을 오르내리던 뗏목꾼들에게는 가히 공포의 대상이었다. 따라서 지명도 '두렵다'는 뜻이 두번(두려울 惶, 두려울 恐)이나 들어간 '황공탄'이다.

이는 순우리말 '으시시한 여울'이라는 뜻인 '으시시비비미'를 한자식 표현한 것이다. 이 때문인지 황공탄은 조선시대 각종 지리지에도 단골로 등장하고 있다. 해동지도, 조선지도, 여지도서, 1872년 지방도, 대동여지도 등에 황공탄이 표시돼 있다. 특히 여지도서는 자세한 설명을 곁들였다.

'(청풍)부의 서쪽 20리 서창 위에 있다. 위아래로 여울이 둘이다. 돌이 문지방처럼 가로 걸쳐져 있다. 성난 물결이 힘차게 내뿜으며 흐르고 매우 위험한 형세가 된다. 아래 여울에는 물이 돌아나가면서 만든 연못이 있다. 그윽하게 깊고 검푸른 빛이 난다. 본토박이들이 말하기를, 물밑은 모두 너럭바위인데 두서너 곳은 가마솥처럼 돌이 파여 있으며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고 한다. 날이 가물면 비를 내려달라고 기도하는 곳이다.'-<여지도서>

제천 문인 권섭(권섭(權燮·1671∼1759)도 황강구곡가에서 황공탄을 노래했다. 그러나 지금은 충주호로 인해 황공탄을 볼 수는 없다.

'四曲이 어드메여 이름도 혼란하구나 / 여울소리와 절벽이 골짜기를 흔드는데 / 그 아래 깊이 자는 용 뱃노래에 깨는구나'-<옥소장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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