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표심 변화로 본 18대 대선 풍향계 - 17대 대선과 18대 총선 지지변화

"충북표심, 지역 실익과 명분 중시"
17대 대선 때 이명박 후보 당선 효자노릇
4개월 뒤 18대 총선에선 민주당 후보 지지
공천실패·정책혼선 등 표심변화 주원인 작용

2012.04.16 19:10:55

17대 대선후보 등록 첫 날인 2007년 11월 25일. 역대 대선 사상 가장 많은 9명의 후보들이 등록을 마쳤다. 당시 1강 2중의 다자구도 속에 대선은 후보간 치열한 경쟁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1위와 2위사이의 크게 벌어진 여론조사 결과가 선거결과로 이어졌다.

충청표심은 대체적으로 보수성향이 강하다. 충청권은 지역에 큰 도움이 되는 실익과 명분이 제시되면 어김없이 손을 들어주는 정치적 특성을 갖고 있다.

1997년 대선 때 김대중 후보의 승리는 충청권에서 갈랐다. 당시 김 후보는 김종필과의 후보단일화를 통해 DJP연합을 구성했다. 결국 대전에서 11만표, 충남에서 25만표, 충북에서 5만표 정도를 앞섰다.

한나라당의 이회창후보에게 40만 표차이로 신승한 결과를 보더라도 충청표심이 당선에 효자노릇을 톡톡히 했음을 반증한다.

16대 대선에서도 노무현 후보는 행정수도라는 커다란 명분을 내세워 대선 10만, 충남 10만, 충북 5만 여표 등 25만표를 노 후보에게 몰아줬다.

17대 대선에서는 중도하차한 심대평 후보는 행정수도 재추진을 공언했고, 이명박 후보는 이명박표 행정도시를 내세웠다.

김종필이 이명박 후보의 손을 들어주고 박근혜 전 대표가 이 후보 지원에 나서면서 보수진영의 진격은 탄력을 받았다. 오히려 국민중심당의 이회창 후보 연대는 보수진영의 분열이라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단일화에 실패한 정동영 후보는 이용희 의원을 앞세워 청주와 충북 남부권 공략에 공을 들였다. 무소속의 이회창 후보는 국민중심당 조직을 중심으로 충청권 압승을 필두로 나섰지만 전국지지율이 답보나 하향세를 보여 부진했다. 한마디로 4분 5열 양상을 나타냈다.

충청권표심이 막판결정을 하는 성향이 강하다. 투표창구 앞에서도 여전히 부동층이 될 수 있다는 점의 특성이 있다. 충남북과 대전은 이명박 당선자가 34-41%의 득표율을 기록해 이회창 후보와 정동영 후보를 따돌렸다. 충북, 충남, 대전 등 충정지역은 보수후보를 선택했다. 호남+충청연대를 거부했다. 대선 때 마다 캐스팅보트를 쥐었던 충청권은 이명박 후보와 이회창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었다.

하지만 충북민심은 충남대전지역과 차이가 있었다. 41.6%를 득표한 이명박 후보가 충북도내 12개 시군 전 지역에서 1위를 지켰다. 정동영 후보(23.8%)와 이회창 후보(23.4%)가 2-3위를 다투어 0.4%의 박빙 승부를 벌였다. 충남에서는 정동영후보를 제쳐놓고 두 보수후보간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다.

충청권에서 이명박(34.3%), 이회창(33.2%)의 표 차이는 1.1%p(9천434표)차이로 박빙이었다.

충북에서는 무소속 이회창 후보가 통합신당 정동영 후보와 2위를 놓고 박빙의 접전을 펼쳤다. 이명박 후보는 전체 70만2천593표중 28만9천499표(득표율 41.58%)를 얻어 여유 있게 압승했다.

이명박 당선자의 경우는 충북전체 득표율이 전국치보다 낮았으나 충주와 제천, 단양 등 북부권에서 47%의 득표율이 나오면서 강세지역이 됐다.

2008년 4월 9일 실시된 18대 총선은 선거의 미묘한 타이밍으로 인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18대 총선은 2007년 12월 19일의 대통령 선거로부터 4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치러진 선거였다. 2008년 2월 25일 거행된 신임 대통령 취임식으로부터는 불과 한 달 반 남짓 후 실시된 선거였다.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압승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충청에서는 참패했다. 충남 10개 선거구와 대전 6개 선거구에서 한명도 당선을 못시켰다. 충북에서는 8개 선거구에서 한나라당 이 제천단양의 송광호 후보만 당선됐다. 충북은 대전충남과 같은 충청권이면서도 자유선진당 바람은 불지 않았다.

충북 유권자들은 안정론을 내세운 한나라당을 철저히 외면했다. 총선에 앞선 2월 당시만해도 각종 여론조사 정당후보지지도에서 충북에서 모두 한나라당이 앞섰다.

결국 4월 9일에는 민주당 후보 6명이 당선됨으로 2개월간 도민의 정당선호도와 후보자 선호도 모두에서 한나라당은 상당한 지지 감소 변화를 보인 것이다. 이는 한나라당과 이명박정부의 인사 및 공천 실패와 정책혼선이 주원인으로 분석됐다.

18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은 친이계열과 친박계의 보이지 않는 알력도 작용했다. 중앙의 인물로 긴급수혈한 윤진식 후보의 전략공천(2008.3.1)이 다소 늦었다.

청주 흥덕갑의 경우도 김병일 후보에 공천을 주었다가 일주일 만에 번복함으로 스스로 공천의 신뢰성과 공정성에 상처를 주었다.

김준환 후보의 공천 반발로 탈당해 친박연대로 출마한 것은 결국 한나라당의 지지표를 분산시켜 민주당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 장인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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