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작품 표절은 중대 범죄다

2012.06.06 15:42:37

김승환

충북대교수

분기탱천하면서도 논리적으로 이렇게 말하는 작가가 있다. '원형나무 작품은 2009년 강원도 인제 마을미술프로젝트 작품과 모양, 디자인, 조명 등에서 매우 흡사하다.' 한마디로 2012년 충북 청원군의 조형물 공모사업은 표절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이 작가는 '흡사하다'라는 우회적 표현을 썼지만 표절의 확신을 숨기지 않는다. 이어 그는 다른 몇 작품도 표절 가능성이 높으므로 청원군은 이번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고 선정을 취소해야 한다는 주장을 도출한다.

이 사안은 윤리와 도덕인 표절(剽竊)과 재산 침해인 저작권(著作權)의 두 가지 문제를 내포하고 있기에 간단치 않다. 특히 선정된 팀이나 처음 문제를 제기한 작가가 충북과 관련이 없으므로 이 사안은 명백하고 단순한 표절논란임에 분명하다. 또 다른 작가는 심사과정에서 표절의혹이 제기됐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당선작으로 선정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어 당선작 결격사유를 보면 '표절과 관련해 유사작품으로 밝혀질 경우 선정을 취소한다.'고 되어 있으므로 이 규정과 보편적 예술윤리에 따라서 처리해야 한다고 재삼 강조한다.

결론을 말하면 이렇다. '문의 문화예술의 거리 조성사업' 당선작 중 한 작품이라도 표절이 분명하다면 그 팀의 선정을 취소하고 다시 공모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런 공공의 예술작품은 창의성과 함께 공익성과 공공성 그리고 공정성을 우선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버드 대학의 교수였던 롤즈(John Rawls, 1921 - 2002)는 원초적 입장이라는 제1원칙과 기회의 평등이라는 제2원칙을 제기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은 공정한 기회의 평등 위에서 경쟁하고 결과의 불평등에 대해서는 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롤즈가 특별히 강조하는 점은 공정한 절차가 보장되지 않았다면 결과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결과에 대하여 승복할 이유도 없고 승복해서도 안 된다는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야 한다.

이런 롤즈의 정의론에 입각해 보면 이번 표절시비는 절차적 정의에 관한 중차대한 문제가 없지 않은 것 같다. 심사과정에서 표절 의문이 제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심사를 강행한 것, 당선작 발표 이후 사실을 은폐하기 위하여 작품을 교체한 것, 심사위원 구성 논란의 소지 등 여러 가지 절차상의 문제가 제기되어 있다. 따라서 이 일의 주관부서인 청원군은 제3자의 관찰자적 시각을 가지고 선정된 작가나 문제를 제기한 작가의 진술을 신중하게 경청해야 한다. 이때 표절의 시비가 항상 그렇듯이 (혼성) 모방(模倣)인가 표절인가의 문제를 섬세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특히 개념표절(Idea plagiarism)의 경우 표면적으로는 표절이 아니지만 내면적으로는 표절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개념표절은 생각, 사상, 개념, 원리 등을 차용하는 높은 차원의 표절이다. 아울러 창의적 변형이나 존경하기 때문에 모방하는 오마주(hommage) 그리고 자기표절(self-plagiarism) 등을 구분해야 한다. 또한 포스트모더니즘의 혼성모방(pastiche)과 패러디(parody) 등은 창의성으로 볼 수도 있으므로 선정된 LH조형연구소의 주장도 신중하게 경청해야 한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지만 국제사회에서 한국은 표절천국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예술가들의 예술작품은 영혼의 힘을 다해서 창의적인 작품을 만드는 것이므로 그 가치나 가격은 돈으로 환산되기 어렵다. 만약 이번 표절문제가 유야무야로 넘어가면 예술가들의 창의성은 짓밟힐 것이고, 창의성을 절취하는 도적예술가들이 횡행할 것이며, 예술생태환경의 혼탁은 심화될 것이다. 한마디로 표절은 타자의 지식과 재산을 도적질하는 것이므로 윤리와 도덕을 넘어서는 중범죄다. 따라서 조형물사업에서 특정인이나 특정단체의 독점지배구조가 있고 또 은밀한 주고받기가 있었는지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 당연히 이종윤 청원군수, 하재성 청원군 의회의장, 그리고 충북도청 감사관실은 철저하게 조사하고 판정해서 명명백백하게 처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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