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택

시인, 충북문인협회장

얼마 전 이웃의 몇 지인과 함께 서울에 있는 식당에서 모임이 있었다. 같이 상경한 옆의 친구가 종업원에게 면박을 당했다. 아무런 생각 없이 "아줌마, 반찬 좀 더 주세요"라고 말했는데 그 종업원은 대뜸 "아줌마 아니예요!"하고 친구에게 쏘아붙였던 것이다. 친구는 몹시 무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아줌마가 아줌마 아니라고 소리를 지르니 서울에서는 어떻게 불러야 되는 거야!"하고 머리를 긁적거렸다. 식당의 종업원이나 초면부지(初面不知)의 사람과 만났을 때 부르는 호칭이 다양하기도 하며 궁색할 때가 많다. 몇 해 전만 해도 식당 종업원에게 아줌마를 아줌마라고 부르면 싫어하니까 아가씨라고 하라는 노하우를 배운 게 엊그제 같다. 그러다가 아가씨라고 하면 싫어한다고 해서 사용 중지가 되었다. 자주 가는 식당 아줌마에게 물어보니 '아가씨'란 호칭이 특정 직업여성을 상기시키는 것 같아서 싫어한다고 말한다.

아줌마를 아줌마라고 부르지 못하고 아가씨를 아가씨라 부르지 못하니 뭐라고 불러야 할까? 생각하다가 한번은 '사장님'이라고 불렀더니 "저 사장님 아니에요"라고 답 하면서도 말투는 부드러웠다. 한동안 아줌마와 아가씨의 시대가 지나가고 '언니'의 시대가 있었다. 그런데 언니라는 여성들의 전용명사를 나이 살 먹은 사람이 자신보다 한참 어린 종업원에게 연신 '언니!'하는 것이 영 어색했다. 1980년대 대학가에서 여학생이 남자 선배를 '형'이라고 불렀는데 그 호칭보다 더 듣기가 거북했다. '언니'호칭도 어떤 연유인지는 몰라도 식당에서 뜸해졌다.

그러다가 '이모'가 등장했다. 대학가 앞의 식당을 가보면 거의 전부가 학생들이 '이모'라는 호칭을 쓴다. 고모나 숙모도 아니고 이모다. 딸만 일곱인 딸부자 집에 명절날 모인 조카들처럼 이모들을 찾는다. 한때는 학생들이 졸업해서 직장에서도 이모로 불렸다 한다. 몇 해 전 중국 동부지역 유적답사를 갔다가 산동성 청도의 짝퉁시장을 들렸다. 짝퉁 제품 가게 앞에서 중국종업원이 '아줌마·아가씨·언니·이모'를 골고루 부르며 호객하는 것을 보았다. 우리 한국의 식당 종업원 호칭들이 '세계적 추세'가 되었다. 지난해 한국여성민우회에서 식당 종업원 호칭 공모를 했다. 심사결과 1등에 '차림사'라는 호칭이었다. 이 밖에 호칭 후보로는 '두레손' '맛지기' '조양사'가 있었다. '차림사'란 '밥과 반찬을 차려주는 분'이라는 뜻이라는데 과연 라면집에서 호텔 식당까지 종업원을 '차림사'라고 부를 날이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식당 종업원을 대상으로 "사람들이 어떻게 부르는냐"의 설문에는 친근감이 있는 '이모'가 33%, '아줌마'가 26%였다 한다. 한편 남자 종업원은 그저 '아저씨'라고 해도 별 무리가 없는 것 같다. 20대의 아르바이트생부터 60대 주인까지 남자들에게는 '아저씨'라고 불러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직 못 받다. 소리를 쳐 아줌마·아가씨·언니·이모·사장님 등 모두 동원하여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이여!'이기에 생겨난 것이 식탁 위의 벨이다. 그러나 이것마저도 아무리 눌러봐도 '종은 누구를 위하여 울리나!'가 되는 경우가 있다. 가장 바람직 한 것은 식당에서 종업원을 소리쳐 부르지 않은 식당 문화가 필요하다. 서비스 교육이 잘돼 있는 식당에서는 종업원들이 늘 손님 테이블을 주시하고 있다. 눈이 마주치면 눈짓을 하거나 손만 살짝 들어도 다가와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묻는다. 더 잘된 곳은 종업원이 손님의 눈높이를 맞추어 낮은 자세로 주문을 받고 응대 한다.

영어권에서는 종업원을 부를 때 '익스큐즈 미(Excuse me)라 하고, 일본에서는 '스미마생(すみません)'이라고 한다. 뜻은 둘 다 '실례합니다.' 이지만, 누군가를 부를 때, 대화를 하겠다는 의사 표시용으로도 쓰인다. 이를 '여기요'로 의역(意譯)할 수 있다. 우리도 식당서비스문화가 호전 될 때까지는 손을 살짝 들고 "여기요!"라고 하면 무난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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