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풍 한벽루, 창건연대 훨씬 이르다

지금까지 1317년 고려 충속왕으로 알려져
30년 이전 '한벽루'라는 한시존재 확인
'朱열'이 지어…'청풍'이라는 표현도 등장

2012.09.03 18:19:14

조선후기 이방운이 그린 '금병산'이라는 그림이다. 그러나 건너편 금병산보다 한벽루(가운데 3개 건물)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우리나라 3대 익랑(행랑의 일종) 누각의 하나인 제천 청풍의 한벽루(寒碧樓·보물 제 528호)가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이른 시기에 창건된 것으로 밝혀졌다.

문화재청은 한벽루에 대해 '고려 충숙왕 4년(1317) 당시 청풍현 출신 승려인 청공이 왕사(王師)가 되어 청풍현이 군(郡)으로 올려지자, 이를 기념하기 위해 객사의 동쪽에 세운 건물이다'라고 홈페이지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국내 백과사전 중 최고의 권위를 지니고 있는 '두산백과'도 '1317년(고려 충숙왕 4)에 건립되었으며 석축토단의 덤벙주초 위에 엔타시스를 사용한 층하주(層下柱)를 세우고 마루를 설치하였다'라고 비슷한 서술을 하고 있다.

'엔타시스' 공법은 기둥 가운데 부분을 약간 배부르게 하는 것으로, 순우리말로는 배흘림 기법이라고 한다. 그러나 본보가 확인한 결과, 1317년 이전의 '한벽루'라는 한시가 존재하고 있다.

조선 중종 때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에는 주열, 이승소, 양숙, 최숙생, 유운 등 5명의 한시 제영(題詠)이 실려 있다. 제영은 제목을 붙여 시를 읊는 것을 일컫는다.

이들 5명 중 주열(朱悅)이라는 고려시대 인물은 청공왕사보다 사망연대가 30년 앞서고 있다. 주열의 출생연대는 확인이 안 되고 있으나, 사망연대는 1287년(충렬왕 13)이다.

그는 고려 원종 때 병부낭중(兵部郞中)으로서 충청·전라·경상 3도의 안렴사(安廉使)를 역임하며 이름을 떨쳤다.

안렴사는 고려시대 지방 장관직으로, 조선시대로 치면 관찰사(종2품) 정도에 해당한다. 정황상 한시 '한벽루'는 충청도 안찰사 시절에 지어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뿐만 아니라 시 내용 중에도 '寒碧'(한벽)이라는 표현도 직접 등장하고 있다. 다음은 시 전문이다.

'물빛이 맑고 맑아 거울 아닌 거울이요(水光澄澄鏡非鏡) / 산 기운이 자욱하여 연기 아닌 연기로다(山氣靄靄煙非煙) / 차고(寒) 푸름(碧)이 서로 엉기어 한 고을 되었거늘(寒碧相疑作一縣) / 맑은 바람(淸風)을 만고에 전할 이 없네(淸風萬古無人傳).'

인용문 중 '차고 푸르름이 서로 엉기어'는 강건너 금병산(錦屛山·혹은 倂山) 풍혈에서 찬바람이 나오고, 또 청풍호(남한강) 물결이 푸르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상을 종합하면 한벽루는 △최소한 주열의 사망연대인 1287년 이전에 창건됐고 △청공스님 왕사 즉위년인 1317년에는 중창이 있었을 가능성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주열의 한시에 지금의 지명이 된 '淸風'(맑은 바람)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점도 또 다른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러나 청풍을 창작적인 표현으로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르고 있다.

이태백(이태백·701-762)은 최소 5백여년 전에 '양양가'(襄陽歌)라는 시에서 이미 '淸風朗月不用一錢買'(청풍랑월불용일전매)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직역하면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은 즐기는데 돈 한 푼을 쓰지 않아도 된다' 정도의 뜻이 된다. 일부 사료는 '淸風朗月'을 '淸風明月'로 적기도 한다.

/ 조혁연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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