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아 보이는 '등자' 고대전쟁 흐름 바꿨다

충북대 박물관대학 특강
말잔등 위 신체고정…기병이 궁수+검술사
고구려 강성 밑거름…유럽 전파에도 한몫

2014.03.31 20:01:17

무용총 벽화 중 수렵도에 등장하는 인물은 하나같이 등자가 달린 말을 타고 있다.

단순한 고리 모양으로 하찮게 보이는 등자(金+登子·발걸이)가 세계 전쟁사의 흐름을 바꿔놓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특히 고구려가 그 과정에서 등자문화가 유럽으로 전파되는데 일익을 담당했다는 설도 함께 제기됐다.

등자는 말을 탈 때 발을 디딜 수 있도록 만든, 안장에 달린 고리 모양의 철제 발 받침대를 말한다.

충북대 박물관(관장 성정용교수·고고미술사학과)이 주최한 제 20기 박물관대학의 올 3번째 강좌가 얼마전 열렸다.

이날 강좌에는 경희대학교 강인옥 교수가 '동토 위에 피어난 문명: 시베리아의 고대문화, 그리고 한국'을 주제로 특강을 했다.

강교수에 따르면 인류 역사상 철제 등자를 가장 일찍 만들었고 잘 다룬 민족은 흉노족이다.

이런 등자는 단순해 보이지만 발을 말에 단단히 고정시키면서 기사가 말잔등 위에서 자유로운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따라서 달리는 말 위에서 활을 쏘거나 창을 휘두를 수 있는 등 제 2, 3의 연계 동작이 가능하도록 해준다.

기병(騎兵)이 궁수와 검술사를 겸하는 것이 이때부터 가능해 지면서, 고대의 전쟁하는 모습을 획기적으로 바뀌어 놓았다.

고구려가 강성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흉노의 등자제조 기술을 이른 시기에 수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강교수는 밝혔다.

그는 "흉노는 중국 한나라에 밀려 시베리아 지역을 내주고 서진, 즉 유럽으로 이동하기 전까지 고구려와 국경을 접하고 있었다"며 "고구려는 이 과정에서 등자기술을 수입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가야 인물형토기에서도 등자의 모습이 보인다. 이는 등자의 한반도 전파의 주요 근거가 된다.

강교수는 그 근거로 고구려 무용총 수렵도에 등장하는 사냥하는 남자 모습을 들었다. 그림을 보면 말잔등에 올러앉은 한 남자의 발에는 등자가 뚜렷하게 그려져 있다. (그림 참조)

고구려에 의해 한반도에 유입된 등자문화는 남부로도 급속히 보급, 가야토기에도 등장하고 있다.(그림 참조)

한편 고구려는 등자문화가 유럽으로 전파되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강교수는 그 과정에 대해 △5세기의 고구려는 지금의 몽골지역을 영토로 갔던 있던 '유연'(柔然)과 동맹을 맺고 △그 댓가로 등자 등 철제무기 문화를 전해줬다고 밝혔다.

그는 이후의 흐름에 대해 "유연은 자신들의 밑에 복속했던 투르크(돌궐)에 패퇴해 동유럽으로 도망가 아바르족이 된다"며 "이 와중에 서양에도 등자와 중갑병이 전해졌고, 이어 유럽 중세기사의 탄생을 가져왔다"고 밝혔다.

/ 조혁연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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