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으로 하여 아름다운 세상

2014.07.20 14:35:21

오영호

광혜원면 의용소방대장

사람의 삶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희생을 바탕으로 한다. 하나의 생명이 태어나기까지 열 달이라는 긴 시간을 자신의 뱃속에 품고 다니는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처럼 희생으로 하는 사랑은 언제나 아름답다.

지난 4월 세월호 침몰 참사 당시 젊은 여승무원의 고귀한 희생으로 꿈 많은 고교생들이 탈출할 수 있었던 얘기는 일부 파렴치한 승무원들과의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우리들의 가슴을 미어지게 했다. 사람이라면 모두가 죽음 앞에서는 두려움을 느끼게 마련인데 그 여승무원은 어찌도 그리 의연하게 학생들의 안전을 먼저 챙겼는지, 지금도 사고 당시의 동영상과 증언들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나이가 들면서 필자는 감성이 메말랐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사고를 접하며 눈물을 흘리는 것은 아마도 의용소방대라는 희생을 모티브로 하는 단체에 몸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재직하고 있는 광혜원면 의용소방대는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 소방조라는 명칭으로 소방차의 전신인 완용펌프 2대의 장비로 조직되어 올해로 100주년을 맞이하는 기념비적인 단체이다. 당시의 흔적으로 '소화 8년 8월 광혜원 소방조 공로자'라고 새겨진 철제 상패가 남아 있는데, 소화는 일제가 1926년부터 사용했던 연호다.

예로부터 역사는 앞선 사람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시간의 기록이라고 말한다. 잘잘못을 떠나서 개인과 집단, 나아가 국가의 이야기들이 켜켜이 쌓여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정표가 되어주는 것으로, 비록 우리 광혜원면 의용소방대의 전신이 일제강점기 소방조를 모태로 하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화마로부터 지역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려고 탄생한 것이지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하려던 단체가 아니었음을 말해주는 기록들이 곳곳에 남아있어 지금까지도 주민들의 신뢰를 받고 활동하는 순수한 민간 봉사단체의 대명사로 불리고 있다.

이렇듯 지난 100년의 역사와 전통이 만들어낸 각종 경험들이 재난사고가 다양해지는 오늘날에도 효율적인 상황 대처에 나침반 역할을 톡톡히 하는 것은 오직 봉사와 희생정신이 대원들 가슴에 버팀목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요즘 일상생활 전반에서 단연 화두가 되는 것은 안전이다.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안전불감증에 대한 생각들이 세월호 침몰 사고를 계기로 크나 큰 의식의 전환을 가져왔지만 국민 모두가 공감하는 수준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세월호 참사 이후 대통령께서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부조직을 만든다고 하셨지만 일부 행정직들의 자리 보존과 부처 이기주의가 119 대원들을 광화문 광장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뙤약볕 아래 방화복을 입고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소방관들을 보면서 소방의 뿌리를 두고 있는 의용소방대원으로서 비애와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대다수 국민들은 자신이 위험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뭐냐는 질문에 119라는 대답의 여론을 보더라도 안전을 대변하는 최고의 브랜드 119가 인정받는 사회는 요원한 것일까·

얼마 전 제주도에서 화재를 진압하던 소방관이 순직하는 사고가 또 발생했다. 쉬는 날임에도 화재현장에 출동하여 혹시 있을지 모를 인명을 검색하던 소방관의 주검은 자신들의 희생으로 국민이 안전한 세상을 꿈꾸는 이 땅의 모든 소방관들의 몸짓임을 알기에 누군가의 희생으로 하여 세상은 언제나 살만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이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

<저작권자 충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PC버전으로 보기

충북일보 / 등록번호 : 충북 아00291 / 등록일 : 2023년 3월 20일 발행인 : (주)충북일보 연경환 / 편집인 : 함우석 / 발행일 : 2003년2월 21일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무심서로 715 전화 : 043-277-2114 팩스 : 043-277-0307
ⓒ충북일보(www.inews365.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by inews365.com, I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