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제천에는 '청초호'가 있었다

2014.08.28 16:41:36

조혁연 대기자

1895년(고종 32). 단반령과 명성황후 시해에 분노한 백성들이 유생을 중심으로 봉기했다. 그 유명한 을미의병으로, 우리고장 제천지역도 중심지의 하나였다. 제천출신 의병중에 정운호(鄭雲灝·1862~1930)라는 인물이 있다.

제천지역 명군가의 종손이었던 그는 34세 나이로 유인석의 제천의병에 가담했다. 그는 문재가 뛰어나 의병에 투신하기 전에 고향 제천의 아름다운 풍광을 노래한 '제천팔경'이라는 칠언율시를 지었다.

팔경시의 제목은 '의림지 낚시하는 늙은이'(林湖釣·), '백련사 돌아가는 중'(蓮寺歸僧), '대암의 노니는 물고기'(·巖遊魚), '관란정의 우는 여울'(瀾亭鳴灘), '한벽루 가을 달'(碧樓秋月) 등이다.

나머지 세 개의 시는 '능강의 봄 돛단배'(綾江春帆), '옥순봉 기암'(玉筍奇巖), '월악산 늦단풍'(月岳晩楓) 등이다. 이중 제 5경시인 '한벽루 가을달'은 다음과 같은 운율로 일대 풍광을 노래했다.

1872년 청풍부 지도에 표기된 청초호, 풍혈, 수혈.

'물 가까이 한벽루는 비취빛을 둘러 희미하게 보이고 / 맑은 하늘 밝은 달은 가을을 따라 돌아가네 / 가을바람 불어 명주(明酒)에 그림자를 만들고 / 옥로(玉露)는 빛을 더해 객의 옷을 씻누나 / 청초호(靑草湖) 밝아 물고기 헤아릴 만하고 / 금병산(錦屛山) 환해 새는 공중에 나는구나 / 1년 중에 오늘 같은 밤 경치 다시 오기 어려우니 / 휘파람 불며 난간에 기대 눈을 씻고 살펴보네.'

한시 애호가들을 위해 원문도 실었다. '近水碧樓環翠微 / 晴天晧月伴秋歸 / 金風吹影·明酒 / 玉露添光潔客衣 / 靑草湖明魚可數 / 錦屛山耀鳥空飛 / 一年難再今宵景 / 發嘯憑欄候見拭.'

인용문 중에 '청초호'(靑草湖)라는 지명이 보인다. 몇해전 충주시와 제천시는 댐건설로 만들어진 남한강 내륙 담수호의 이름을 둘러싸고 '충주호'와 '청풍호'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 그러나 당시 제천시는 '청초호'라는 지명을 거론하지는 않았다.

청초호가 남한강 어느 수역을 의미하는지 단박에 드러나지 않는다. 시에 등장한 한벽루, 금병산라는 지명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통시대 청풍현 사람들은 한벽루와 금병산 수역을 청초호라고 불렀다.

지명대로라면 청초호는 '짙푸른(청초) 물색의 호수'가 된다. 청초호는 수몰로 인해 완전히 사라졌지만 조선시대에는 대중성을 꾀나 지녔던 것으로 보인다. 지명 청초호는 김정호가 지은 '대동지지'(1863년)에도 등장한다.

'금병산(錦屛山) 아래에 있다. 강이 나뉘어진 한 갈래의 물이 모여 호수가 되었는데 물색이 마치 쪽빛과 같다.'(在錦屛山下江分一派渚湖色如藍) 인조~숙종 연간의 문신인 오도일(吳道一)은 '청초호'라는 제목으로 한시를 짓기도 했다.

청초호는 쪽빛의 물색 외에 주변에 바람굴(風穴)과 물굴(水穴)이 존재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수몰되기 전의 바람굴은 '동굴 안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크게 들렸으며 웅덩이에 고인 물은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였다'고 기록돼 있다.

반면 여지도서는 물굴에 대해 '금병산 아래 있다. 동쪽의 풍혈에서 100여 보 거리에 이어진 절벽 아래 구멍이 있는 곳으로 샘물이 솟아 나오는데, 그 맛은 매우 차다. 혹은 풍혈과 상통한다고 말한다"라고 적었다. '1872년 청풍부' 지도를 보면 보다 명확히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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