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단상(斷想)

2014.08.31 16:03:32

윤상원

영동대학교 발명특허학과 교수·사단법인 한국발명교육학회 회장

38년 만에 가장 빠르다는 추석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사람들은 갈 길이 아무리 멀어도, 경제적 여유가 부족해도 어김없이 고향과 가족을 찾는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의 발로(發露)인 것이다. 올 추석도 약 3천만 명의 대이동이 예상된다. 도로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때이기도 하다. 끝없이 이어지는 귀성차량은 부모와 자식을, 객지와 고향을 연결하는 '인간 띠'처럼 보인다. 크나큰 인연의 '끈'인 셈이다.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거대한 에너지의 이동이자, 명절만이 갖는 고유의 힘이다.

고향에는 부모님 또는 어머님이 홀로 살고 있다. 추석 명절이 가까워지면 어머님은 며칠 전부터 국거리부터 밑반찬까지 추석 차례상 준비에 새벽부터 분주하다. 자식과 손주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상상하며, 어머님의 마음은 마냥 설레기만 하다.

추석 명절 때마다 보는 자식이지만, 또 보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부모님은 같이 늙어가는 자식을 보면서 가슴이 저민다. "객지에서 먹고 살려고 얼마나 고생했으면…" "자식의 고달픔을 내가 대신해 줄 수만 있다면…" 목이 메어 금세 눈시울이 붉어진다. 자식들은 날이 갈수록 굽어져 가는 부모님의 등을 볼 때마다 애처롭기만 하다. 부모님의 얼굴과 손등에 핀 검버섯을 바라보면서 자식들의 마음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추석 명절 때마다 늙어가는 부모님 부양문제로 자식들의 마음 한편이 무겁다.

추석 명절이 끝나면 자식들은 익숙한 보금자리를 향해, 또다시 여행을 떠난다. 어머님은 떠나는 자식들에게 이것저것 챙겨주느라 정신이 없다. 몰래 숨겨 두었던 잡다한 음식들이다. 떡, 마늘, 참기름, 호박, 된장, 부침개, 과일, 고기, 콩, 고구마, 고추장…. 냉장고와 찬장 구석구석에서 무언가 끊임없이 꺼낸다. 마을 잔칫집에서 받은 샴푸, 치약은 기본이다. 결국, 자식들이 들고 간 건강식품을 타고 온 자동차에 밀어 넣고는 어머님은 비로소 안도(安堵)한다.

자식들을 보내며 눈물짓는 부모님의 주름진 얼굴을 뒤로하고 작별 인사를 건넨다. 자식들은 끝내 눈물을 훔치고 만다. 못난 자식은 객지에서 아무리 삶이 고달프고 힘겹다 해도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다시금 용기를 되찾는다.

그 옛날의 추석 명절이 그립다. 모두가 설렘으로 넘쳤다. 온 동네 사람들은 모두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추석 명절 때만큼은 세상이 밝았다. 기운이 넘쳤다. 집집이 먹을거리가 풍성했다. 온종일 배가 불렀다. 배탈이 나도록 먹어도 어머님의 약손은 소화제였다. 이때 각종 놀이가 빠질 수 없었다. 윷놀이, 강강술래, 제기차기, 팽이치기, 씨름, 줄다리기, 거북놀이, 소싸움 축제….

그러나 지금은 하나둘씩 자취를 감추고 있다. 젊은 세대들은 옛날 놀이의 흥겨움을 잘 모른다. 요즘은 고스톱, 노래방, 게임, 장기, 바둑 등이 주된 놀이다. 추석 명절 때 해외여행은 하나의 트렌드(Trend)로 자리 잡았다.

어느덧 고향 마을에는 빈집이 꾸준히 늘어가고 있다. 마을에는 나이 든 어르신들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웃집 어르신의 목소리는 점차 사라져 간다. 희망을 선사하는 아이들이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어린아이들의 깔깔 되는 웃음소리는 사라진 지 오래다. 도시에서 인스턴트식품 먹고 자란 손주들의 재롱은 껄끄럽다. 옛날의 그리움이 발동되지 않는다. 골목 구석구석에는 '쌀쌀함'이 그득하다.

이제 고향 마을은 급격히 늙어가고 있다. 잡초가 무성한 집들이 쉽게 목격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고향 마을은 주저앉을 것이다. 어쩌면 몇 년 내에 사라질지도 모른다. 고향을 지키는 우리네 부모님들마저 세상을 떠나면 우리는 다시 고향으로 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고향에는 부모님의 풋풋한 손길과 사랑이 있을 때, 고향이 따뜻한 모습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멀지 않아 부모님의 자리가 바로 우리의 자리로 변모될 것이다. 그때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자식을 맞이할까. 불현듯, 추석날 해외여행 떠난 자식을 못 볼까 봐 두렵다. 그래서 추석날 귀경길은 늘 더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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