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문제는 야당이다

2014.09.03 13:31:57

정상호

서원대 사회교육과 교수

4년 전에 필자는 새해를 맞아 '다시 문제는 민주당이다'('내일신문' 2010.1.3)라는 시론을 기고한 적이 있다. 자료를 찾다 문득 다시 읽어보았는데 지금의 사정과 하나도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적잖이 놀랐다. 현재의 상황에 비추어 문맥과 표현만 조금 바꿔 놓았지만 핵심은 거의 똑 같다. 독자 여러분들도 놀라운 기시감을 함께 경험해 보길 바란다.

민족의 최대 명절인 한가위를 목전에 두고 희망에 들떠야할 가을 풍경이 정치권의 살벌한 대결로 삭막하기 그지없다. '이런 국회는 지구상에 없으며, 정치 때문에 선진국이 될 수 없다'는 김영삼 前대통령의 통탄은 모처럼 옳은 지적이다. 이번 7·30 보궐선거의 참패와 세월호 특별법 파동을 보면서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무능과 무기력을 질타하는 비판들이 사방에서 들려온다. 기억하기나 부르기에도 까다로운 당명의 새정치민주연합으로서는 절대 수적 열세와 무소불위의 정부, 대통령 눈치 보기에 급급한 공룡 여당 앞에서 어쩔 수 없었노라고 자위할 수도 있다. 그러한 인식과 변론은 현 상황의 심각성을 호도하는 궤변이다. 실험용 용기에 갇힌 개구리는 찬물과 끊는 물에서는 생사를 건 탈출을 감행하지만 조금씩 온도가 올라가는 미지근한 물에서는 상황 파악을 못한 채 서서히 죽어간다. 오늘날 야당의 위기의 근원은 지난 대선 이후 제대로 된 통렬한 반성을 하지 못한데서 나왔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지도부와 정치인들은 대선과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무수한 반성의 구호와 사죄의 언어들을 읊조렸지만 이에 상응하는 행동을 실천하지도 대안을 조직하지도 못하였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지금 당장 착수해야 할 최상의 과제는 개헌이나 선거구제 개혁도, 진보계열 정당과의 통합이나 일부 유력한 시민단체 인사의 영입도 아니다. 그러한 일들은 정치인이나 예비 출마자들에게는 중요한 이벤트이지만 대다수 국민들의 실생활과는 먼 이야기일 뿐이다.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과제는 바로 당의 사회경제 정책과 노선을 전면 혁신하는 것이다. 조세·재정·산업정책에 있어 재벌중심 수출주도 정책의 과감한 포기와 영세 상공인과 중소기업, 비정규직의 보호육성으로의 일대 전환을 선언해야 한다. 지역간 균형 발전 및 일자리 창출을 위해 농업과 중소 제조업의 장기 근속자 자녀에 대한 대학특례 제도 및 무이자 학자금 지원 제도를 도입하자. 집권을 원한다면 더 이상 당의 정치적 기반을 호남과 젊은 세대에게서만 찾으려는 낡은 집토끼 전략을 단념해야 한다. 대신, 양질의 교육·보육·의료부문의 공공서비스를 확장하여 일자리에 전전긍긍하는 수많은 청년들과 부모님들의 근심을 해소해야 한다. 이번에 발생한 연이은 군대 폭력 사건을 계기로 단계적 모병제로의 전환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더 이상 예산 제약을 이유로 머뭇거릴 이유와 근거는 없다. 81개 상장 기업의 사내 보유금은 무려 516조원으로 5년 전에 비해 거의 두 배가 증가했다. 지난 이명박 정부에서 4대강 사업과 해외자원개발에 쏟아 부은 액수는 물경 70조에 이른다.

진보든 보수든 시대 상황에 따라 먼저 변화하지 않으면 버림받는 것이 동서고금의 보편적 진리이다. 돌이켜보면 한국의 진보세력은 민주화라는 조류를 타고 집권하였지만 세계화와 양극화의 거센 도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여 끝내 좌절하였다. 한국사회가 가야할 변화의 방향은 민주정부 10년의 비판적 평가와 서민의 고단한 삶이 분명하게 일러주고 있다. 그럼에도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눈감고 귀를 막는다면 보수정부의 장기 집권 또한 예정된 미래이다. 그렇게 된다면 눈물겹게 서러운 이들은 몰락할지도 모를 야당들이 아니라 중소 자영상공인과 비정규직과 같은 우리네 서민들일 것이다. 그래서 또 다시 문제는 야당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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