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키에 '모쿠소' 캐릭터로 등장, 괴산 김시민

2014.10.23 17:34:12

조혁연 대기자

음악, 무용, 기예가 어울리는 일본 전통연극으로 가부키(歌舞伎)가 있다. 16∼17세기 에도시대에 서민 예술로 시작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고, 2009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됐다.

고려대 최관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이 가부키에 임진왜란 제 1차 진주성 전투의 맹장으로, 우리고장 괴산 출신인 김시민이 '모쿠소'라는 캐릭터 이름으로 등장하고 있다.

1차 진주성 전투에서 김시민 주도의 조선관민이 보여준 필사의 항전은 적인 왜군에게도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때문에 당시 왜군들은 김시민을 '모쿠소'라고 불렀다. 이때의 모쿠소는 '진주목사' 할 때의 '牧使'(목사)를 일본식으로 발음이고, 표기는 '木曾'으로 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입신출세를 다룬 작품으로 '다이코키'(太閤記)가 있다. 이 다이코키에 '모쿠소'가 실리면서 일본 전역으로 광범위하게 유포됐고, 그 영향으로 가부키에 조선군의 맹장이자 충신이면서, 원한을 품고 일본을 전복하려는 원귀 캐릭터로 그려지게 됐다.

모쿠소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가부키 작품은 지카마츠 몬자에몬(近松門左衛門)의 혼쵸산고쿠시(本朝三國志·초연 1719년 2월 14일)이다. 여기에서 모쿠소는 조선에서 가장 신뢰받는 장군으로 나중에는 일본군에게 비참히 살해당하는 장군으로 그려져 있다.

또 우메노가후(梅野下風)의 히코산곤겐치카이노스케타치(彦山權現誓助劍·초연 1786년 윤10월 18일)에도 모쿠소관이 등장한다. 여기에서 모쿠소관은 환술로써 일본의 신덕(神德)과 대항하지만 패하고 수행자로 변장한다.

임진왜란 종전후 내려진 선무공신교서이다. 김시민이 2등에 책봉돼 있다.

이어 마시바 히사요시(眞柴久吉)의 심복 고모리 오토나리를 찾아가 조선이 그려진 거짓지도를 바치며 조선공략의 안내역을 청하지만 때마침 등장한 히사요시에게 정체를 간파당하고 실패로 돌아간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최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김시민을 지칭하는 '모쿠소'라는 표현은 종전 후 예술작품이 아닌, 임진왜란 당시의 도요토미 명령서에도 이미 등장했다. 배경은 김시민이 이끄는 제 1차 진주성 전투의 조선군 대활약으로, 도요토미 명령서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져 있다.

①"모쿠소성(もくそ城)을 포위 공격할 무장에게."

②"보쿠시성(牧司城)을 포위하여 공격용 축대를 설치하고 공격시 사상자가 없도록 각성하고 실로 강성하게 움직여 한 사람도 남김없이 무찔러 죽일 것."

③"지난달 29일 모쿠소성(もくそ城)을 공격해 무너뜨리고 한 사람도 남김없이 모두 무찔러 죽였다는 보고서(중략) 특히 모쿠소의 목을 그대의 손으로 쳐죽인 것."

①은 히데요시가 조선에 있는 무장들에게 제 2차 진주성 공격을 명령하는 명령서의 제목이다.

②는 명나라와 강화를 위해 일본군이 해야 할 임무를 적은 히데요시 명령서의 한 부분이다.

③은 진주성 함락의 보고서를 받은 히데요히가 진주목사를 잡은 우키타 히데이에(宇喜田秀家)에게 보낸 표창장이 한 구절로, 모쿠소가 진주성을 지키던 조선의 대장 즉 진주목사임이 명확히 드러나 있다.

김시민은 종전후 선무공신(敏宣武功臣)에 책봉됐다. 그 교서가 일제강점기 때 어떤 이유로 일본으로 유출됐다가 문화재환수운동을 통해 지난 2006년에 고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사당이 있는 괴산이 아닌, 마지막으로 숨진 경남 진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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