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에서 보낸 크리스마스 편지

2014.12.23 19:32:38

북구의 겨울은 유난히 길고 까맣다. 일조량이 가장 짦은 동지 무렵, 즉 성탄절 즈음 오후 3시면 벌써 어둠은 거리를 채운다.

다음 날 아침 8시가 훨씬 넘어야 햇빛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북유럽 기후의 특성상 그나마 영하의 추운 날씨가 되어야 태양이 뜨는 것을 볼 수 있고, 구름이 드리운 날들은 종일 밤인지 낮인지 분간이 안 될 때도 많다.

이러한 겨울철 날씨는 스웨덴에 처음 와 사는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성탄절이 멀지 않은 요즈음 스웨덴은 날씨는 어두워도 사람들 기분만큼은 가볍고 살짝 들떠 있다.

가정집 창가나 거실 탁자 위엔 아드벤트(왕이나 높은 분이 임하심을 뜻하는 말) 촛대의 촛불이 환히 일렁이기 시작했다.

촛대에는 눈물이 흐르지 않는 생초 4개를 꽂아놓고 예수강림절 첫 주일에 왼쪽 초부터 켜기 시작해 매주 차례로 초를 켠다.

마지막 4번째 초까지 불이 켜지면 바로 크리스마스 주가 되는 것이다.

루터교가 500년간 국교로 정해져 있던 스웨덴의 모든 명절 행사는 기독교문화와의 뿌리가 깊다.

이 아드벤트 촛불 풍습도 기독교문화의 영향이지만 이 어둡고 추운 나라의 기후와 썩 잘 어울리는 풍속이기도 하다.

집집마다 실내에서 촛불이 환히 비쳐 나오고 여기저기 크리스마스 장식이 붙어 있는 스웨덴의 따스한 골목은 거니는 이의 마음을 포근하게 해주며 잠시 천상에 와있는 듯한 착각도 일으킨다.

모든 집들이 아드벤트 촛대로 12월의 어둡고 긴 밤을 밝히며 창문이 많은 우리집도 예외는 아니다.

눈이라도 펑펑 쏟아져 설국이 되면 분위기는 더 아름다워지고 이맘때 구워먹는 노란치자빵 내음이 운치를 더한다.

사람들은 청어와 연어요리 돼지족발, 칠면조오븐구이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전통 음식을 성탄부페로 차려놓고 직장동료 친지 등과 어울려 먹는다.

옛날 스웨덴이 가난하던 시절엔 성탄절에 갑자기 많은 음식을 먹은 사람들이 담석증에 걸려 병원 응급실이 붐볐다는 일화도 있다.

스톡홀름 구시가지 감라스탄에 높이 38m의 성탄트리는 해마다 스텐벡 가문의 기부로 세워지는데 수만 개 전구에 불이 켜지면 발트 해안의 고풍스런 정경과 어울려 성탄절 분위기는 최고조에 이른다.

성탄절이 제일 큰 명절인 스웨덴은 아이가 있는 집은 산타할아버지가 큰 자루에 선물 가득 들고 정말로 오신다.

산타는 보통 친지나 이웃의 어른들이 그 역할을 맡는다.

썰매마차에 호롱불을 들고 오거나 형편이 안 되면 옷만 입고 오기도 한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모든 일터도 쉬고 해외 나갔던 식구들도 돌아와 모임에 참석한다.

가장 공간이 넓은 친지의 집에 모여서 선물을 교환하기에 가정의 날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성탄트리 밑에는 크리스마스 선물들을 가득 쌓아 놓는다.

우리 가족도 해마다 서로에게 줄 성탄 선물 리스트를 작성해 왔다.

그런데 올해부터 어쩐지 그 선물 비용이 전에 없이 사치로 느껴지면서 그 돈을 자선단체에 기부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필요한 물건은 이미 넉넉히 가지고 있고 선물의 품목을 정하고 구입하는 것도 고민거리다. 이런 생각을 넌지시 식구들에게 전해 보았다.

전형적 스웨덴 남자인 남편은 "이 마누라가 갑자기 무슨 소린가" 싶은 표정이고, 딸은 "엄마 맘은 알지만 우리집 전통도 중요해. 크리스마스 이브의 이 따스한 분위기기를 놓치고 싶지 않아. 우리집 성탄 전통을 그냥 유지했으면 좋겠어."하며 기부는 매달 따로 하겠단다.

딸아이 말대로 식구끼리 정을 나누는 가족 행사도 쉽게 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예수님 탄생의 의미와 우리 가족의 전통 사이에서 지혜로운 교집합을 더 찾아보아야겠다.

/ 윤기윤기자 jawoon62@naver.com

스웨덴에 스톡홀름에 살고 있는 이인자씨

이인자

출생 1954년 경기도 평택

1982년 스웨덴으로 이민

스톡홀름 대학교 상과대학 졸업

Man power 재직

현재 스톡홀름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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