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줍는 노인들의 깊어지는 한숨

오전 내내 모아도 '2~3천원'이 전부
예전 kg당 200원…요즘에는 70~80원이 평균
경쟁 갈수록 치열…폐지 얻으려 청소도 대신
벌이 시원치 않아 빵으로 끼니 때우는 사람도

2015.02.24 19:39:39

24일 오전 11시께 청주 성안길에서 한 노인이 손수레에 실린 폐지를 정리하고 있다.

ⓒ김동수기자
"폐지 가격이 내려가 하루 돈벌이가 시원치 않아. 폐지 줍는 노인도 많아 서로 싸우기도 해."

24일 오전 11시께 청주시내에서 가장 번화한 성안길에는 폐지가 실린 손수레나 유모차가 곳곳에 세워져 있었다.

인근 상점에서 박스를 얻기 위해 노인들이 세워 놓은 것이다.

그중 골목길의 한 식당 앞에서 빗질을 하는 80대 할아버지가 눈에 띄었다.

올해 87세라는 이씨 할아버지는 식당에서 모아 놓은 박스를 받은 답례로 골목을 청소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주지 않고 자신을 위해 모아 놓은 식당 주인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청소라도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한테 박스를 준다니깐. 다음에 또 받으려면 이렇게 해야 해."

청소를 마치자 이씨 할아버지는 30여kg의 폐지가 실린 손수레를 끌기 시작했다.

"오전 동안 모아서 고물상에 팔아도 이 정도면 2천~3천원 받아. 예전에는 kg당 200원씩 했는데 요즘에는 70~80원이 평균이야."

성안길 시내에 버려진 박스를 모으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이씨 할아버지를 따라 길 한복판으로 나서자 손수레에 박스를 싣고 있는 또 다른 노인을 만났다.

폐지를 10여년째 주워다 팔고 있다는 허(70)씨 할머니였다.

허씨 할머니의 하루 일과의 시작은 성안길과 육거리시장 상점이 문을 닫는 밤 10시 이후 상인들이 내다 놓은 박스를 줍는 것부터 시작한다.

점심때가 되면 평소 잘 아는 상인들이 보관해 둔 폐지를 가지러 다닌다.

허씨 할머니는 몇년 째 계속 떨어지고 있는 폐지 가격보다 성안길 상인들의 장사를 걱정했다.

상인들이 장사가 안 되면 그만큼 물건이 안 팔리기 때문에 가지고 갈 수 있는 박스도 줄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소일거리로 폐지를 줍는 노인들도 늘어나면서 경쟁도 갈수록 치열해 진다.

"노인네들끼리 폐지 때문에 싸우기도 많이 해. 암묵적으로 자기 구역이 정해져 있는데 새로 온 사람이 폐지를 가져가면 한바탕 싸움이 나는 거지."

이씨 할아버지와 허씨 할머니처럼 폐지를 줍는 노인들의 하루 벌이는 적게는 2~3천원으로 하루 김밥 두 줄 사먹을 수 있는 금액이다.

운이 좋은 날에는 상인들이 박스를 많이 내다놔 하루 1~2만원을 손에 쥘 수 있지만 이런 날은 손에 꼽는다.

여기에 지난 2013년부터 폐지 매입 가격이 계속 떨어져 노인들의 걱정만 깊어가고 있었다.

청주에서 고물상을 하는 W(47)씨는 "지난 2013년부터 kg당 100원에서 떨어지기 시작해 지금은 80원을 준다"며 "하루에도 노인 80~100여명이 폐지를 가져오고 있지만 점심을 사먹기 어려워 빵과 우유로 끼니를 때우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 김동수기자 kimds03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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