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또 다른 이름 '닭강정 아줌마'

유현정씨, 매달 공부방 아이들 위해 배달
눈 오나 비오나 1년 넘게 후원

2015.05.07 19:52:20

닭강정 아줌마 유현정(31)씨가 두 딸과 함께 밝게 웃고 있다.

[충북일보]"작은 나눔의 마음이 아이들에게 큰 희망입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충북'에서 '닭강정 아줌마' 사연을 페이스북에 올리자, 순식간에 27개의 댓글과 '좋아요'가 쏟아져 나왔다. '닭강정 아줌마'는 1년 동안, 어려운 형편의 아이들에게 희망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매달 마지막 주 목요일은 아이들에게 가장 신나는 날이었다. 공부방 아이들이 무척이나 좋아하는 닭강정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달 중 가장 맛있는 이날을 아이들은 매일 손꼽아 기다렸다. 청주에서 맛있기로 소문이 자자했던 닭강정 매장은 늘 바빴지만, 이날만큼은 밀린 주문도 미뤄두고 공부방 아이들을 위해 정성껏 닭강정을 준비했다.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상상하면 더없이 즐겁죠"

닭강정이 많이 팔린 날보다 공부방으로 닭강정 배달하는 날이 더 행복하다고 늘 말했던 분이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사랑으로 포장되어 오는 닭강정은 동심을 더욱 부풀게 했다. 그렇게 1년 넘는 기간 동안 아이들을 꾸준히 후원해왔다.

그런데 지난 4월부터 아이들은 더 이상 맛있는 닭강정을 먹을 수 없게 되었다. '닭강정 아줌마'의 건강이 나빠져 닭 강정집을 운영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아줌마가 아프다는 소식에 아이들은 너무도 슬퍼했다. 단순히 닭강정을 못 먹어서만은 아니었다. 닭강정에 얹혀오던 그 사랑과 배려의 손길을 아이들도 느껴왔기 때문이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어느 날부터 아이들은 '닭강정 아줌마'를 위해 엽서에 기도문을 만들었다. 아이들 스스로 모여 만든 편지에는 순수한 마음이 그대로 묻어났다.

공부방 어린이들이 닭강정 아줌마에게 쓴 감사의 편지.

'저는 박세원입니다. 닭강정 맛있었어요. 고맙습니다.'

'전 이소라예요. 꼭 빨리 나으세요.'

'안녕하세요? 닭강정 맛있게 먹었어요. 매일 기도하고 있어요!'

아이들은 커다란 엽서에 자신들의 마음을 빼곡히 채워나갔다.

공부방 어린이들이 닭강정 아줌마에게 감사의 마을을 전하고 있다.

그러던 지난 6일 오후 5시,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청주사회복지관에 '닭강정 아줌마'가 직접 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동안 음식만 놓고 갔기에 실제로 아줌마를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아이들은 환호했다. 모두 공부방에 모여 '닭강정 아줌마'를 기다렸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닭강정 아줌마'는 뜻밖에도 31살의 젊은 엄마였다. 귀여운 두 딸을 선물처럼 데리고 왔다. 아이들은 친자녀처럼 닭강정 아줌마의 품에 스스럼없이 안겼다. 또 '닭강정 아줌마'의 등에 업힌 아기와 수줍음 많은 큰 딸 서연(4)이와도 금방 친해져 함께 놀았다.

"정기건강검진에서 갑상선 암 판정을 받았어요. 두 아이를 키우기도 벅찼고 몸도 너무 피곤해져서 닭강정 사업을 계속할 수가 없었어요. 막상 그만두려니 아이들이 마음에 걸렸어요. 매달 기다렸을 텐데…"

'닭강정 아줌마' 유현정(31)씨는 자신의 두 딸과 놀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기를 갖게 되면서 생명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죠. 내 아이가 소중한 만큼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을 돕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그래서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을 통해 내가 할 수 있는 후원방법을 찾았던 겁니다. 제가 나눌 수 있는 것이 '닭강정'이니, 일부를 나눴을 뿐입니다."

보통 자녀가 생기면 더 '내 자식'만 챙기는 이기적 생각을 갖기 마련이다. 그만큼 내 식구가 아닌 타인을 위해 물질적 신체적 고단함을 바치기가 말처럼 쉽지 않다. 오월의 신록이 세상을 빛나게 하는 것처럼, 젊은 '닭강정 아줌마'의 후원과 봉사는 가정의 달을 맞은 인간사에 싱그러운 빛을 뿌리고 있다.

"저도 커서 닭강정 아줌마처럼 서로 나누며 살고 싶어요"

내 것만 지키려는 각박한 세상에서 이웃과 함께 나누려는 따뜻한 마음을 심어준 '닭강정 아줌마'의 마음이 어버이날, 작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 윤기윤기자 jawoon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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