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풍수·한시로 유혹하다, 떠돌이 요승 양천식

2015.10.06 17:34:01

조혁연 대기자

[충북일보] 우리고장 옥천사람 권대진(權大進)을 현혹한 인조조의 떠돌이 요승 양천식(楊天植)은 출가와 환속을 3번씩이나 반복할 정도로 생활 자체가 불안정했다. 뿐만 아니라 이름을 역시 3번씩이나 개명하는 등 뭔가를 감추고 싶어 하는 인물이었다.

'그 가운데 '양병(楊丙)이라고 하는 자는 바로 양천식이며, 양팽(楊彭)은 바로 양정식이다. 병 등은 세 번이나 그 이름을 바꿨는데, 10년 동안에 세 번이나 승려가 되었다가 환속했다.' 하고….'-<인조실록 9년 2월 3일자>

인용문의 양정식은 양천식과 이부동모(異父同母)의 형제간으로 출가와 환속을 함께 했다. 실제로는 어떤지 모르나, 양천식은 외견상 관상(觀相)과 풍수(風水)를 보는데 능했다. 권대진이 첫 만남부터 양천식에게 설득당한 것은 이 때문으로 파악된다.

양천식은 권대진을 보자 "백마장군이 될 관상"이라고 유인하는 말을 던졌다. 민속에서는 전장에서 용맹을 떨친 인물을 '백마장군'으로 호칭하고 있다. <삼국지>의 공손찬(公孫瓚)이나 신라의 명장 김유신(金庾信)을 백마장군으로 부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선검(先儉)은 공초하기를, "기사년에 자칭 관상을 잘 본다는 어떤 승려가 대진의 집에 와 관상을 보고 매우 좋다고 하였답니다. 그리고 지난 겨울철 끝 무렵에 또 와서 말하기를 '경오년의 운수가 좋았으나 지나가 버렸다. 그러나 이 뒤에 어찌 좋은 기회가 없겠는가. 너는 과연 백마장군이다.'고 하였답니다. 이 말은 대진에게서 들은 것입니다." 하고….'-<〃>

'10년 동안 3번 출가하고 3번 환속했다'는 표현이 보인다. '인조실록' 9년 2월 3일자.

관상이 얼굴의 길상(吉相)을 보는 것이라면 풍수는 땅의 길상으로 보는 것으로 원리를 비슷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때문에 고려시대에는 풍수지리가를 지배층의 반열로 인식해 '땅선비', 즉 지사(地士)라고 부르기도 했다.

권대진의 아들 락(絡)은 문초 과정에서 "그 뒤 정후엄과 동행하다가 길에서 한 사람을 만났는데 환속한 승려인 것 같았으며, 정후엄이 '이 사람은 풍수지리를 잘 본다.'고 하였습니다"라고 답변했다.

인용문의 '길에서 만난 이 사람'은 떠돌이 승려 양천식을 지칭한다. 양천식은 동생 정식의 말을 빌면 '정씨 나라'의 도읍지로 진잠(鎭岑)이나 신도(新都)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진잠은 지금의 대전특별시 유성구, 신도는 계룡시 일대를 지칭하고 있다.

'양팽은 「정담이 말하기를 『나라를 얻은 뒤에는 도읍을 진잠(鎭岑)이나 신도(新都)로 옮겨야겠다.』고 하였다.」' 하였다.'-<〃>

그는 한시 오언절구도 제법 흉내냈다. 물론 그 한시는 서인과 남인이 연합안 인조정을 무너트리고 대북파의 지지를 받는 인물을 지존으로 추대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정한 역모사건에는 옥천인 조흥빈 외에 공주에 사는 한설(韓渫)이라는 인물도 거의 같은 시기에 비슷한 내용을 고변(밀고)했다. 그는 문초가 시작되자 이렇게 말했다.

"그 해 10월에 병이가 떠나면서 나에게 시를 주었는데, 그 시에 '탑전에 올라 앉아 남쪽을 제압하고(坐榻南藩壓) 권세의 저 위엄 북두성을 두르리라(威權繞北斗)'하였습니다."-<〃>

양천식과 권대진 모두 심문이 끝나자 마자 곧바로 처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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