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알려져 온 가네코 후미코 얼굴사진(왼쪽). 자살전 그려진 초상화 얼굴로, 이 모습이 진짜이다.
[충북일보]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 1903∼1926)는 독립운동가 박열(朴烈, 1902~1974)의 연인으로, 조선을 사랑했던 일본 여성으로 근래들어 알려지기 시작했다.
특히 1910년대 청주군 부용면(현 세종시 부강면) 부강에서의 7년 생활이 그녀의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 사상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각종 매체에 등장하는 그녀의 얼굴 사진은 잘못 알려져 온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 인터넷에서 '가네코 후미코'를 치면 뉴스는 물론 각종 백과사전에 △눈이 크고 △가운데 가르마를 했으며 △그리고 기모노를 입은 여성 얼굴이 검색되나 이 여성은 가네코 후미코가 아닌, 동성동명의 다른 일본 여성인 것으로 밝혀졌다.
박열의사 기념관 준공소식을 보도한 2004년 7월 23일의 '야마나시(山梨) 일일신문'도 가네코 후미코의 잘못 알려진 사진을 게재했다.
ⓒ자료: 박열의사 기념관.
이같은 사실은 일본 야마나시(山梨)현의 가네코 후미코 연구회장인 사토 노부코(佐藤信子) 씨가 한국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 기념사업회를 통해 부강면 곽창록(82, 부강향토사 연구위원) 씨에게 관련 내용을 우편으로 보내오면서 확인됐다.
앞서 <충북일보>는 지난해 8월 광복절 특집기사(8월 12일자)로 가네코 후미코를 다룬 바 있고, 같은 해 10월 19일자에서는 그녀의 가장 가까운 혈육인 가네코 타카시(金子敬·외가쪽 친조카) 씨의 부강지역 방문을 지면에 실었다.
이 가운데 10월 19일자 <충북일보>가 곽위원을 통해 일본 야마나시현으로 전해졌으나, 결과적으로 백과사진 사진을 그대로 실은 본보의 보도는 두차례 모두 '잘못 알려진 얼굴사진'을 내보낸 셈이 됐다.
사토 연구회장은 곽위원에게 보낸 글에서 가네코 후미코의 진짜 얼굴 자료는 △수감 직전 연인 박열의 품에 안겨 책을 읽는 모습의 사진 △자살 직전 그녀의 동지였던 모치츠카 가츠라가 그린 초상화 등 단 두 점밖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책읽는 모습의 사진은 △어떻게 중대 범죄자가 감옥 안에서 밀회를 즐길 수 있는가 △또 어떻게 사진을 찍었고, 그것은 왜 외부로 유출됐는가 등의 여론이 들끓으면서 당시 와카쓰키 내각이 총사퇴한 바 있다.
그럼에도 동성동명의 잘못 알려진 가네코 후미코 얼굴 사진이 일본 국내는 물론 한국에서도 계속 전파된 것은 1977년 일본의 잡지와 단행본들이 동명이인을 잘못 실으면서부터라고 사토 회장은 밝혔다.
실제 가네코의 마지막 초상화와 잘못 알려진 사진을 비교해 보면 전자 인물은 눈이 작고 안경을 착용한데 비해 후자는 눈이 크고 하관이 빠른 모습을 하고 있는 등 뚜렷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박열과 함께 찍은 가네코의 사진은 책읽는 동작에 얼굴이 반쯤 가려서 있어 세부적인 비교는 어려운 편이다.
현재 박열의 고향인 경북 문경에는 '박열의사 기념관'이 건립돼 있고, 그 내부에는 가네코 후미코에 관한 자료도 비교적 풍부하게 전시돼 있다.
그러나 이곳에 전시된 △야마나시현 일일신문(2004년 7월 23일자) △가네코 후미코 심포지엄 자료(2004년) △나시노키사의 가네코 후미코 관련 저서(2006) 등 일본 자료 모두에도 잘못 알려진 사진이 실려 있다.
곽위원은 "잘못 알려진 사진이 뒤늦게나마 확인돼 다행"이라며 "인터넷과 백과사전에 잘못 실려 있는 사진을 바로 잡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 조혁연 객원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