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령 컴퓨터에 한자 '馬'(마)를 입력하려 할 경우 로마자 발음 'ma'를 치면 같은 발음의 麻·罵 문자도 함께 노출된다. 이들 글자군 가운데 '馬'의 성조에 해당는 저요조(低凹調, 제3성)를 선택해야 문자 입력이 끝난다.
나머지 麻·罵 등의 문자는 로마자 발음 'ma'를 입력한 후 각각 제2성(상승조), 제4성(하강조)을 선택해야 입력이 완료된다.
일본문자인 가나(かな·假名)는 한글과 같은 소리문자이기는 하나 음절문자에 속하고 있다. 음절문자는 소리 표기의 최소 단위가 음절이면서 자음과 모음이 분리되지 않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오십음도의 하나인 자음 'か'은 'ka'로 발음되나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다. 이에 비해 음소문자인 한글은 같은 '가' 발음의 경우 자음 'ㄱ'(k)과 모음 'ㅏ'(a)로 분리된다.
일본은 자국 문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로마자 발음을 통한 입력 방법이 대중화돼 있다.
ⓒ일본문자(히라가나+가타카나) 어플 캡처화면.
따라서 일본은 분명히 자국 문자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자와 마찬가지로 로마자 발음을 이용해 가나를 입력하고 있다.
가나만으로 문자 입력을 하는 경우도 있으나 로마자 입력 방식보다 크게 복잡해 잘 사용하지 않고 있다. 가령 'か'음 계열의 'こ(ko)를 입력하려면 'か' 버튼을 다섯 번 누르거나, 아니면 'か' 버튼을 선택한 후 같은 버튼내 또 다른 작은 버튼 하나를 다시 눌러야 한다.
이에 비해 음소문자인 한글은 자음과 모음 한 번의 터치를 통해 원하는 글자 대부분을 즉석에서 무수히 조합할 수 있다. 따라서 어문학자들은 음소문자를 문자 발달사의 마지막 단계이자, 언중(言衆)이 구별할 수 있는 소리의 최소 단위로 파악하고 있다.
영어도 같은 음소문자이기는 하나 발음과 문자가 일대일로 대응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발음부호를 별도로 알고 있어야 한다. 이에 비해 한글은 발음과 문자가 거의 같아 발음부호가 거의 필요하지 않다.
일본 어문학자 노마 히데키(野間秀樹)는 한글의 이런 모습을 보고 '한글의 구조를 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音이 文字가 되는 놀라운 시스템을 발견하게 된다.(중략) 그것은 문자의 탄생이자 知를 구성하는 原字의 탄생이기도 하고 쓰는 것과 쓰여진 것의 혁명이기도 하다'(한글의 탄생, 2011)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영국 BBC 방송은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데버러 스미스가 한글을 배운지 7년만에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공동 수상하자 '세종대왕도 상을 받을 만 하다'라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세종대왕은 1444년 봄 초정약수에 거둥, 한글 다듬는 작업을 계속 한 것으로 세종실록에 기록돼 있다.
/ 조혁연 객원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