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보(試補)의 시보(始步)

2017.06.21 20:22:17

신원정

청주시 환경정책과 주무관

아는 한자를 총동원해서 추측을 해봤다. 처음 시(始), 걸음 보(步)를 써서 '시보' 아닐까? 임용을 받고 첫걸음을 내딛는 신규 공무원! 포털사이트에 검색해보고 나서야 정확한 뜻을 알 수 있었다. 시험 시(試). 도울 보(補). 어떤 관직에 정식으로 임명되기 전에 실제로 그 일에 종사하여 익히는 일. 인턴, 수습, 견습 등은 들어봤지만 '시보' 라는 단어는 낯설었다. 그냥 '9급'이라고 생각했던 내 직급이 무려 9글자나 되다니.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나의 걱정만큼 참 길고 어려운 단어라고 느꼈다.

첫 출근 날. 비장한 마음으로 앉았으나 직급만 있고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행복한 아침을 여는 굿모닝 시스템, 온나라, 새올행정, e호조…. 아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일은 나의 사정을 봐주지 않고 밀려들어왔고, 눈앞이 깜깜했다.

막연히 상상만 했던 직장 생활이 현실로 느껴지자 하루 종일 걱정이 가득했다. 결재 옆의 숫자가 늘어날 때마다, 전화가 울릴 때마다 심장이 콩콩거렸다.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물어 보고, 물어 보고 또 물어 보고는 것뿐.

내가 이 일을 정말 잘 할 수 있을까 걱정할 시간도, 고민할 틈도 없이 시간은 잘도 흘러갔다. 하루 수십 번씩 했던 질문이 점점 줄고, 이제는 나름 생각도 하고, 새로운 일도 추진해보고, 그러면서 업무를 잘 해냈을 때의 보람도 알게 됐다.

물론 혼자서는 절대 가능하지 않았다. 글자 하나, 단어 하나, 여러 소소한 문제까지 신경써주신 주변 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어떤 것도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길도 방향도 모르고 붕 떠있던 신규 공무원을 잘 이끌어주신 많은 분들에게 지금도 늘 감사한 마음뿐이다.

발령 초기에는 일이 닥치면 급하게 해결만 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업무가 익숙해지면서 뒤를 돌아볼 약간의 여유가 생겼고, 처음에는 잘 몰라서 제대로 하지 못했던 일들이 생각났다. 더 잘했으면 좋았을 걸.

월별로 해야 할 일, 주의해야 할 사항들, 사업의 진행 현황, 업무 처리 순서 등. 아쉬운 마음에 적어놓았던 것들이 점점 늘어가면서 어느새 용지 몇 장을 가득 채웠다.

내가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시작한 일이었지만, 내가 떠나고 내 자리에 앉을 뒷사람에게도 잘 전해주고 싶었다.

앞으로 많은 후배들이 들어올 것이고, 그 후배들도 나와 비슷한 상황을 겪겠지. 어렵고, 고민되고, 답답하고…. 내가 많은 선배님들의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내가 남긴 작은 도움이 시간을 따라 흐르면서 큰 도움이 되고, 큰 도움이 마침내 큰 변화로 나타날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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