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1년의 하림궁(河臨宮)과 2017년의 탄금대(彈琴臺)

2017.06.18 13:14:36

김희찬

아이들의 하늘 주비위 간사

1446년 전의 일이다.

551년 음력 3월의 일이다. 신라 진흥왕이 충주에 들렀다. 봄이 그득했을 그 때에도 숲이 있었을 것이다. 그 숲속 한 곳에 펼쳐진 왕을 위한 연주. 물가에 임해서 펼쳐진 특설 무대. 그래서 하림궁(河臨宮)이었던가·

삼국통일을 구상하던 진흥왕, 이에 우륵(于勒)과 그 제자들의 <하림궁 특별 콘서트>가 있었다. 어떤 악기가 쓰였을까· 그리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악기 구성의 단면은 <백제금동대향로(국보287호)>에서 엿볼 수 있다. 그 뚜껑에는 금(琴)ㆍ완함(阮咸)ㆍ동고(銅鼓)ㆍ종적(縱笛)ㆍ소(簫)의 5가지 악기가 있다. 신라 토우(土偶)에 부분적으로 표현된 악기들을 모아도 비슷하다. 단출한 구성이었지만 그 파장은 컸던 듯 싶다. 특별히 그때의 가락에 기초해 만들어진 곡을 하림조(河臨調)라는 새로운 풍조의 음악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곳 탄금대에서 당대 최고의 음악가 우륵의 연주를 들으며 구상했던 삼국통일의 위업은 이루어졌다. 그리고 봄가을로 전국의 주요장소로 선정한 명산(名山)과 대천(大川)에 제사드리던 국행제(國行祭)의 한 곳인 견문산(犬門山)의 별명이 탄금대가 되었다.

천년의 세월이 흘렀다.

1592년. 임진왜란의 임진년(壬辰年)이 바로 그 해이다. 음력 4월이니 진흥왕보다 한 달이 늦다. 비가 왔다고 한다. 왜(倭)의 침략과 파죽지세로 밀고 올라오는 급박한 상황에 특별히 삼도순변사(三道巡邊使)의 직을 받고 충주로 내려온 이가 신립(申砬)이다. 서울을 떠날 때의 기병 80명이 충주에서는 100배나 늘었고, 결국 8천 고혼(孤魂)으로 남았다. 서울에서 충주까지 중간에 모집된 3천명과 충주목사 이종장(李宗張)이 충주에서 모집한 5천명이 그들이다. 8천 고혼을 하나로 기리고 추념하는 것은 맞지만, 그 중에 5천명의 충주 장정이 돌아갔다는 사실은, 충주 사람도 잘 모르는, 아는 사람만 아는 이야기다.

1592년을 기준으로 탄금대를 읊은 이전의 시(詩)에는 우륵(于勒)이 주인공이다. 1592년 임진왜란 시기부터 지어진 시에는 우륵과 신립이 함께 등장한다. '탄금대'라 불리던 곳이 '열두대'로 불리기도 하며, 신립 장군의 이야기가 더해진 것이 이때부터다. 천 년의 변화가 그렇게 전설과 기록에 남아있다.

탄금대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첫 사진이 현재로서는 1915년이다. 당시 충주를 방문했던 일본인이 찍은 것으로 탄금대로 향하는 신작로(新作路) 끝에 나무 한 그루만 우뚝 보이는 민둥산이 그것이다.

그 신작로는 1912년에 계획한 <충주시구개정(忠州市區改定)>의 일환으로 설계되어 만들어진 길이다. 이것의 목적은 충주에 새로 이식되어 시험재배에 성공한 소위 충주 특산이라 불리던 '황색연초(黃色煙草)'의 수송을 위한 목적으로 넓힌 길이다. 길이 끝나고 탄금대 모퉁이를 돌아가면 기다린 것이 돛배였다. 포구가 있고, 거기에서 담배를 싣고 서울로 물길 즉, 수운(水運)을 이용해 실어냈던 것이다. 대량으로 생산돼 쏟아지기 시작한 담배 운송의 방법으로 택했던 것이 탄금대행 신작로와 한강 수운이었다. 이것은 결국 1928년 개통된 충북선 철도의 충주까지 연장 이후로 수운 이용이 끊기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충주에서 학교를 다니며 서너 번 내지 대여섯 번 탄금대로 소풍을 가야만 졸업했던 풍경도 20세기와 함께 지나갔다. 이제 그곳은 고즈넉한 추념의 공간이거나, 뜻모르는 사람들은 단순한 유원지 정도로 받아들인다.

2017년 6월. 탄금대에 다시 가야금 소리가 들리고 있다. 5월 내내 짝짓는 새소리만 그득하던 그곳에 가야금을 비롯한 국악기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충주시립우륵국악단이 시험적으로 시도한 연주가 매주 토ㆍ일요일 오후 4시에 탄금대 야외음악당에서 30분씩 이어지고 있다. 그 소리에 이끌려 사람들의 발길이 그곳을 향한다. 역시 탄금대는 그 이름에 맞는 소리가 있을 때 제맛과 제멋이 난다.

이제 7월말이면 여름내 열릴 충주문화원의 가야금교실이 열린다. 6월을 이어 제소리, 제멋, 제맛을 더할 것이다. 탄금대를 찾으면 귀 기울여 보라. 그 소리가 들릴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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