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게 좋다

2017.07.02 19:31:05

이종혁

청주시 흥덕구 세무과 주무관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노라면 아무 생각 없이 주위 사람들을 관찰하게 될 때가 있다.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재미있는 걸 알 수 있는데 사람들은 신호가 파란 불로 바뀌기도 전에 차량 신호가 주황 불이 될 때쯤, 주위를 한 번 살피고 미리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하는 것이다. 1초도 안 되는 잠깐의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사람들은 서둘러 갈 길을 재촉한다.

비단 횡단보도를 건너는 일 뿐만 아니라 우리들은 무슨 일이든지 서두르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어딘가 이동을 할 때도 빨리 가야 좋다고 생각한다. 밥을 먹을 때도 급하게 먹고, 여유 있게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성급하게 처리하려고 한다. 심지어 사람들은 빨리 취업하기를 원하고 남들보다 먼저 성공하기를 바란다. 우리는 빠른 것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며 살고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 빨리하는 문화가 생겨나기 시작한 건 70년대 급격한 산업화로 인한 것이라고 한다. 아무것도 없던 시절에 빠른 게 그저 미덕인 줄로만 알았던 시절의 이야기다. 물론 이런 빨리하는 문화의 장점도 있다. 우리나라의 눈부신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됐고,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과 집에 주문만 하면 30분 안에 집까지 배달해주는 배달음식문화를 가진 나라가 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필자는 이런 빨리하는 문화가 가져오는 폐단이 훨씬 많다고 생각한다. 먼저 우리는 밥을 너무 급하게 먹는다. 프랑스 사람들은 밥을 먹을 때 1시간은 기본이고 길면 3시간도 먹는다.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보통 30분 정도면 밥을 다 먹는데 이렇게 밥을 성급하게 먹으니 건강에 좋지 않고 밥을 먹으면서 대화할 수 있는 시간도 부족하다. 또 운전을 할 때도 서둘러 가려는 습관이 몸에 배다 보니 급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과속 운전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해서 교통사고가 발생하게 된다. 또 직장에서는 여유 있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을 성급하게 처리하려고 하다가 일을 잘못 처리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남들보다 먼저 승진하려고 하다 보니 서로 치열한 경쟁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도 많다.

'대기만성'이라는 말도 있듯이 천천히 가도 똑바로만 간다면 전혀 문제 될 건 없다.

얼마 전에 TV를 통해서 '멍 때리기 대회'라는 것이 있다는 걸 알게 됐는데, 멍 때리기 대회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앉아서 가장 멍을 잘 때리는 사람이 우승하는 대회이다. 지금처럼 뭐든지 빠르게 하는 것에 익숙해진 우리는 서두르면서 놓쳐버리는 것들이 너무 많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서 잠시 멍 때리기 대회처럼 멈춰 서서 자기 내면의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여유를 가져봤으면 한다. 지금까지 빠르게만 살아왔다면 이제는 조금 느리게 살아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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