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이익에 필요한 공무원

2017.06.22 13:38:16

한정호

충북대병원 내과교수

환자의 생명을 위하여서는 필수적이지만 중증이거나 사망률이 높아 위험한 분야, 민간에서 투자하기에는 어려운 분야를 육성하기 위하여, 거점 국립대학병원이나 권역응급의료센터, 외상센터, 고위험산모/신생아센터, 심뇌혈관질환센터 등을 국민의 혈세로 짓고 유지하고 있다. 곳곳에 이런 센터와 건물이 올라가는 것으 보면, 우리 세금이 잘 쓰려지는 것 같아 좋다. 이런 외형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보건정책이 내적으로는 그 성장을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배안에 복막염이나 췌장염에 의해 고름집이 생기면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위중한 상태에 환자는 놓이게 된다. 이러한 '복강(배 안)의 고름집'의 치료는 과거에는 개복수술만이 유일하였으나, 점차 과학과 의학기술이 발전하며면 다양한 치료법이 도입되어왔다.

일단 배를 크게 열고 수술하기 보단 복강경수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피부에 작은 바늘을 꽂고 방사선조영기와 초음파기기의 도움을 받고 고름집에 튜브를 넣어 고름을 배액하기도 한다. 15년 전까지는 배 안 깊숙이 위치한 췌장이나 그 주변의 고름집은 피부를 통하여 바늘이 도달하려면 그 중간에 위치한 위와 대장의 천공을 유발할 수 있어 어려웠지만, 초음파를 내시경에 결합한 초음파내시경이 나온 뒤로는 위나 식도에서 직접 췌장의 고름이나 종양을 치료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환자들의 생존과 치료율이 획기적으로 오르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한국에만 유독 이상한 규제가 있다. 피부를 통하여 튜브를 넣을 때 사용하는 유도용 철사줄(가이드와이어)을 내시경을 통하여 위나 대장의 병을 치료하고 고름집에 튜브를 넣는데 사용하면 불법이라는 것이다. 같은 회사에서 같은 재질의 철사줄을 길이만 늘려서 제작을 하는 것이라서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도 과거의 허가조건의 변경 없이 사용되고 있고 건강보험의 혜택도 받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미국 식약처의 허가사항에 피부를 뚫을 때만 사용허가를 받은 것이라서 피부가 아닌 위나 식도, 대장에서 사용하면 불법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수년간 한국에서 이 간단한 철사줄을 치료에 사용하려면 어찌할지 문의해왔다. 답변은 미국 식약처의 인정기준을 바꿔오거나, 이 철사줄을 사용한 환자와 사용하지 않은 환자를 나누어 연구해서 효용성을 입증하는 논문을 써오란다. 말은 쉽다. 하지만, 미국이나 유럽이나 일본이나 모두 식약처의 사용이 허용되어 있으며, 시술 자체를 철사줄 없이 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윤리적으로 연구를 진행할 수 없다. 철사줄 없이 고름집에 튜브를 못 넣는데, 어떻게 철사줄 없이 튜브를 넣는 연구 환자를 만든단 말인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철사줄을 만들어 판매하는 세계적인 기업 3곳에 문의를 하였고, 그 대답도 마찬가지로 '한국의 행정제도를 이해할 수 없으며, 다른 모든 나라에서 사용되는데 한국에서만 별도의 임상연구를 진행하라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그럼 한국 시장에 판매를 안하겠다.'란 답변을 들었다.

전 세계 의학교과서에서 최선의 치료방법으로 등재되어 한국의 의과대학에서도 배우고 졸업하는 의료행위가 현실의 대한민국에서는 불법이다. 공장건축인가 내려고 몇 년을 시청에서 살았다는 어느 중소기업인의 절규가 남의 말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겪을 수 있는 일이란 것을 깨달았다. 국민을 위하여 앞서가지는 못할망정 외국의 기관으로 책임을 미루고, 문제가 생기면 나는 책임 못 지니 다른 부서로 민원인을 옮겨다니게 만들고, 만들 수 없는 근거 논문(서류)을 가져오라며 한국에서는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다. 이런 마당에 무슨 의료기기 산업화를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새 정부의 일자리 늘리기에 적극 박수를 보내면서도, 늘어난 공무원들이 이런 책임을 회피하고 민간으로 책임을 미루어 결국 국민이 피해를 보는 현실을 더 공고히 할 공무원 증원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굳이 어려운 의학적 실례를 지면을 빌려 소개한다. 공공이 이익을 위한 공공분야 일자리가 늘어나기를 기대한다.


이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

<저작권자 충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관련기사

PC버전으로 보기

충북일보 / 등록번호 : 충북 아00291 / 등록일 : 2023년 3월 20일 발행인 : (주)충북일보 연경환 / 편집인 : 함우석 / 발행일 : 2003년2월 21일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무심서로 715 전화 : 043-277-2114 팩스 : 043-277-0307
ⓒ충북일보(www.inews365.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by inews365.com, I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