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장금의 절기밥상 - 토종 우리밀로 만든 누른국

할머니의 손맛

2017.06.25 16:31:57

지명순

U1대학교 교수

[충북일보] 일 년 중 한낮의 길이가 가장 길다는 하지(夏至), 태양이 가장 높게 떠 있어 일 년 중 그림자가 가장 짧고 태양에너지를 가장 많이 받아 무더운 날씨가 시작되는 시기라고 한다.

뜨거운 태양 아래 황금빛으로 물든 들녘이 있다고 하여 찾아갔다. 도착한 곳은 충북 옥천군 안남면, 충북 최대 밀재배지이다. 황금빛으로 출렁이는 들녘이 참 아름다웠다. 황금 들녘 중간에 서 있는 사람은 옥천살림 주교종 이사다.

"올해는 가뭄이 들어 밀농사가 썩 잘되지 않았지만 벌써 수확 철이 되었어요!" 아쉬움이 섞인 미소가 흐른다. 주 이사는 일찍이 소신이 있는 농사짓기로 유명한 분이다. "이곳은 대청댐 최상류 지역으로 문전옥답은 수몰됐으나 금강본류에서 60-70년대부터 지어 오던 친환경밀농사를 짓고 있어요. 요즘은 앉은뱅이밀을 많이 농사짓는데 우리 마을만은 토박이 씨앗 '금강밀'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지요."

누른국

ⓒ이효선
이렇게 우리밀 사랑이 유별난 이유는 이 지역 아이들 학교급식에 사용되는 밀가루는 모두 여기 농사지어 빻은 통밀가루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 밀농사는 '고향을 지키는 일' "생명을 지키는 일"이라고 한다.

우리 땅에서 토종 씨앗으로 농사지은 밀은 성질이 서늘하고 맛은 달며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비장을 튼튼히 하고 몸의 열을 내리고 갈증을 멎게 하는 작용을 한다. 수입밀과는 비교가 안 되는 귀하디귀한 여름철 식재료이다.

옥천면 안남면 주민의 자부심으로 농사지은 금강밀로 충청도식 칼국수 누른국을 만들기로 했다. 동네를 대표해 누른국 만들어 주실 분은 올해 아흔이 되신 차분용 할머니이다. 우리밀가루가 8이면 생콩가루는 2 비율로 섞어 국수반죽을 시작한다.

"생콩가루는 왜 넣어요·" "밀가루만 하면 뿌서져 못써~, 콩가루가 들어가면 구숩고 넌출지게(넌출지다: 국수가락이 끓어지지 않고 치렁치렁 길게 늘어진다는 순 우리말) 되지!" "옛날엔 밀가루가 귀해니께 여자들은 딩기가루(보리겉껍질가루)를 섞어 만든 검은색 나는 국수를 먹고, 남자들은 힘을 써야 해닌께 밀가루로 만든 뽀얀 국수를 먹였지~" 그 옛날 궁핍했던 시절 이야기를 듣는 동안 할머니의 주름진 손에서 가루가 덩어리를 이루고 반죽이 매끈해졌다.

열무

ⓒ이효선
이번엔 동네 며느리 최명숙씨가 나설 차례다. "홍두깨에 힘을 주어 반죽을 꾹꾹 눌러가며 넓고 얄팍하게 밀어야 해요." 커다란 홍두깨가 몇 번 왔다 갔다 하니 반죽이 원두막 바닥을 덮었다. 반죽이 조금 마르기를 기다리는 동안 "누른국은 양념장 맛으로 먹는거죠!"하면서 누른국에 얹져 먹을 양념장을 만들기 시작한다. 조선간장에 풋고추와 마늘, 파를 넉넉하게 다져 넣고 소고한 깨소금은 듬뿍~, 참기름과 고춧가루를 섞어 빡빡한 양념장을 후다닥 만들었다. 그리곤 가마솥에 맹물을 부어 불을 집혔다.

반죽 위에 밀가루를 솔솔 뿌려 착착 접어 넌출지게 썰어 빨빨 끓는 물에 국수를 훌훌 털어서 넣고 불을 세게 집혔다. 흰 거품이 올라오고 구수한 냄새에 침을 꼴깍 삼키게 할 무렵, 얌전하게 채 썬 애호박을 넣어 다시 한 번 더 우르르 끓인다. 순식간에 국수 삶기가 끝이 났다. "아무리 국수를 잘 밀어도 국수가 불어 버리면 파이에요."하면서 시어머니께 배운 누른국 끓이는 솜씨를 발휘한다. 어느새 그녀의 이마에는 땀이 줄줄 흐른다.

열무김치

ⓒ이효선
가족들을 불러 모은다. 원두막에 상이 펴지고 양념장과 열무겉절이가 가운데 차려진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누른국이 내 앞에도 놓여졌다. "열무김치랑 양념장 얹어 들어와요. 꿀 맛이니께!"하면서 아흔의 할머니는 많이 먹으라고 권한다.

국수가 구수하고 자극적인 맛이 전혀 없다. 먹는 동안 느껴지는 담백하고 은근한 맛이 중독성을 띤다. 자꾸 국수에 손이 간다. 국수 한 대접을 먹고 나니 등줄기에서 땀이 흐른다. 후련하다. 든든하다. "할머니 건강하세요. 내년에는 제가 누른국 만들어 드릴게요!"

토종 우리밀로 만드는 충청도식 누른국, 고향의 향수와 할머니의 그리움을 담아 올 여름 나도 종종 가족을 위해 만들어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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