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꽃 종이와 만년필
김정범
충북시인협회
썼다가 지우고 다시 썼다가 또 지운다
퍼붓는 눈꽃, 신생의 음악
내리는 눈의 깃털에
가슴의 한 줄 비명을 달아 함께 날리지만,
바람이 밀고 오는 파동과
쇳소리 내며 울리는 기침
얼마 지나지 않아
날 선 글자는 부식되어
녹슨 얼음으로 떨어질 것이다
습기 찬 겨울의 깊이,
이글대며 갈라지는 숯불의 다이아몬드 펜
어울리지 않는 낯선 방향은 상상하지 말아야 했다
눈 속에 초심이라 다시 쓰고
지워지기 전에 휘어진 글씨를 바라본다
흰 습자지 속으로 새가 날아간다
한 점 한 점 파란빛을 문 채,
두꺼운 하늘의 가죽을 뚫고
까마득한 남국의 어디쯤, 미로 속의 궁전을 찾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