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전
김정범
충북시인협회 회원
수수께끼 무한궤도를 돌고 있어
높고 경사진 고도, 미친 별을 지나왔지
진흙 깔린 언덕에 이르자
헛바퀴가 돌고 몸은 땅 깊숙이 가라앉았어
자정이 되어서야 보았어
뱀 혓바닥처럼 갈라진 등, 그을린 잎새
마찰에 탄 마른 풀잎의 자취를
시동을 다시 걸자
정강이뼈에 박힌 나사가 비명 질렀어
흠이 난 고무호스에서 새어 나오는 쉰 목소리
쓸모없는 행성,
쨍그랑 깨지는 살얼음 소리
불현듯 소스라치며 깨달았지
나의 바퀴가 그림 붓이라는 사실을
궤도에 스친 것은 갯지렁이 자국으로 사라지고
남은 물감이 허파에서 잔물결 치고 있어
어느 별에 닿아야 시간의 붓은 제 그림을 그릴까
어둠 속
금 간 헤드라이트를 비추어도
자기 눈을 볼 수 없는 캄캄한 공전,
불멸과 멀어지는 먼지의
까만 불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