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시절

2024.09.24 15:03:39

양선규

시인·화가

달은 10만 년 전, 내 생을 보여주기도 하고 때로는 상처 입은 내 마음을 달래기도 하다가 어떤 날은 구름 뒤에 숨어 내가 걷는 길 조용히 지켜보기도 한다.

나의 두 번째 시리즈 작품은 '겨울 풍경'에 이어 '달과 별'에 관한 이야기다. 20대 중반부터 30대 초반까지 다양한 오브제를 활용해 나의 생각과 상상력을 다양한 이미지로 표현하였다. 그래서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중반까지 내가 제작한 회화 작품에는 열쇠와 천, 실과 단추 등의 재료들이 등장하고 설치 미술에서는 북과 천, 모래와 나무, 계란 껍데기 등의 다양한 오브제를 작품에서 볼 수 있다. 어쩌면 20대 젊은 시절, 간절한 마음으로 유난히 즐겨 그렸던 겨울 풍경, 별과 달, 이러한 주제들이 오늘도 붓을 놓지 않고 그림을 그리고 시 창작으로 이어졌는지도 모른다.

마음과 몸을 치유해 주는 달은 어머니와 같은 존재다. 외롭고 낮고 쓸쓸한 길 걸을 때 어디에서나 어두운 밤 길 밝히고 포옹해 주는 풀잎의 향기를 닮고 나무의 뜨거운 피를 닮았기 때문이다. 달은 거대한 산으로 왔다가 잔잔한 호수처럼 오기도 하고 어떤 날은 첫눈처럼 설레면서 오고 또 어떤 날은 구름에 가려져 잠시 거리를 두기도 한다. 달은 우리에게 많은 위안과 상상력을 준다. 물론 인공위성을 타고 우주여행을 하는 시대이기도 하지만 달은 언제 어느 때고 마음에 평온함을 주고 상상의 날개를 활짝 펴게 하는 그런 힘이 있다

달이야기-1992(양선규)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10대와 30대의 연결 고리인 20대 시절, 뒤돌아서서 귀 기울이면 큰 울림의 심장 소리와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20대는 아름다웠던 사춘기와 고등학교를 마치고 그 연장선에서 보다 더 높이 날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실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또 다른 새로운 출발선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고 의미 있는 시기를 말한다면 아마도 특별한 사람을 제외하고 자신 있게 20대라고 말할 것이다. 반대로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시기는 어느 때인가라고 묻는다면 서슴없이 20대 시절이었다고 말할 것이다. 대부분 20대는 실패와 좌절, 성취와 기쁨,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고 하루하루가 긴장감 있고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 많기에 설렘과 기대감으로 충만해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 또는 대학입시를 해결하거나 대학을 졸업해서도 20대는 또 다른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 어찌 보면 삶은 끊임없는 문제를 풀어야 하는 연속의 미로게임이다. 그러한 갈등에서 나의 지난 20대 시절은 여러 가지 번민과 갈등에 대해 하늘의 별과 달을 통해 위안을 받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20대를 뒤돌아 보면 나도 그랬다. 대학 입시와 학과 변경, 그리고 내 전공만큼 열심히 참여했던 동아리 활동, 세상을 바꾸어 보고자 했던 열망과 군 복무로 인한 휴학과 복학, 취업과 육아, 주택 문제, 시와 그림의 창작 활동에서 오는 이상과 현실적인 고민, 어느 것 하나 쉽게 이룰 수 없는 만만치 않은 세상과 맞서던 폭풍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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