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대한 짧은 생각

2010.04.21 15:06:38

변광섭

청주공예비엔날레 총괄부장

사랑은 불꽃놀이다. 손으로 잡을 수 없는 섬광, 존재의 궁지에서 더없이 황홀하게 피었다 허무하게 지는 환상의 꽃이다. 짧지만 번뜩이며 순간적이지만 뜨겁게 불타오르니 하늘을 향한 경배요, 연인을 위한 축배의 잔이요, 우주를 향한 새로운 도전이다. 불꽃놀이는 끝없이 영원히 펼쳐질 것 같지만 찰나에 불과하다. 활활 타오르던 불씨만이 남아 내 가슴을 문지른다.

사랑은 한 떨기 꽃과 꽃술이다. 비바람, 눈보라, 칠흑 같은 어둠과 공포, 그리고 오랜 인고의 시간과 절제된 미학이 만나야 비로소 꽃망울 터트린다. 햇살 반짝이고 비바람 몰려오니 꽃비가 춤을 추고 사람도 날새 들새도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은 모두 한 떨기 꽃이다. 꽃도 꽃술이 있어야 꽃이다. 그곳엔 생명의 DNA가 숨쉬고 있다. 드러나지 않지만 깊고 느리게 내면의 가치를 꽃그릇에 담아주거나 꽃비를 만들어 준다. 마음 주고 몸 주고 이것저것 제다 주고 버리는 가볍고 비루한 생명이 아니다. 신작로에 개나리꽃이, 산등성이엔 진달래가 활짝 피었다. 어머니 고쟁이 위에도 꽃무덤이 만발했다. 만화방창(萬化方暢), 봄이다.

사랑은 구름 같고 바람 같은 것이다. 사랑을 쓸 때 연필로 써야 하는 이유를 아시는지. 당장 없으면 죽고 못 사는 것 같지만 돌아서면 부질없고 바람 같아서 언제든지 날아가거나 변심할 수 있는 아슬아슬함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을 쓰다가도 마음이 시리고 아프면 이 생각 저 생각 어수선함까지 덧칠할 수 있고 갈대처럼 흔들리니 괜히 볼펜으로 꾹꾹 눌러 쓰고 손도장 눈도장까지 찍지 말라. 창창한 앞날 주눅 들고 생고생이다. 구름 위를 두둥실 떠다닐 때는 야릇한 흥분에 청춘의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지만 어느 순간 처량하기 짝이 없는 나락이 될 수 있으니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사랑 때문이라는 구차한 변명 하지 않으려면 구름에도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내공이 필요하다.

사랑은 여울물이다. 산속의 계곡물이 모여 시냇물이 되고 크고 작은 시냇물이 여울져 호수를 이루고 이것들이 하염없이 흐르고 흘러 거대한 물줄기가 되며 물줄기는 다시 망망대해 바다가 되고 파도가 되며 뱃길이 된다. 그러니, 계곡의 청소부 가제와 우물가의 청소부 물방개와 바다의 청소부 별불가사리는 한 핏줄이고 형제나 다름없다. 모이고 모여, 돌리고 돌려, 쌓이고 쌓여, 흐르고 흘러 새로운 생명으로 잉태하고 창조와 진화를 거듭하니 그것이 사랑 아니고 무엇이랴. 사람의 이야기나 자연의 몸부림이나 햇살의 노래 모두 사랑으로 여울지니 사랑하지 않는 자여 감히 생명을 운운하지 말라. 불경스럽다.

사랑은 석양의 붉은 노을이다. 어머니, 해는 왜 동쪽에서 뜨고 서쪽으로 지나요. 석양은 왜 볼 때마다 붉게 수줍은 누이를 닮았나요. 나는 언제나 붉은 노을처럼 사람을 품고 자연을 품고 세상을 품을 수 있나요. 아들아, 너는 어미의 자궁을 뚫고 세상의 빛을 보았지만 그렇다고 다시 어미의 자궁으로 되돌아갈 수 없지 않느냐. 내 피붙이지만 돌아갈 때는 저 숲속으로 홀로 외로이 가야한다. 시작은 작고 초라할지언정 끝은 크고 아름답고 미려해야 한다. 그래야 인생이고 삶이며 생명인 것이다. 가는 길 오는 길 다르고, 시작과 끝이 다르며, 하늘과 땅이 다르듯이 아침태양 저녁노을도 다른 것이란다.

사랑은 하나 혹은 여럿의 경계다. 너와 내가 하나고 가고 옴이 하나며, 이성과 감성이 서로 다르지 않다. 지나온 길과 지나갈 길, 사랑과 애증, 피고 짐, 시간과 공간, 하나 혹은 여럿이 뭉치고 모여 있는 것이 인생이고 무상이다. 맑고 향기롭게를 외치고 무소유를 노래한 노스님조차 물욕과 순백의 미 경계에서 얼마나 많은 갈등과 인내와 절제와 고난을 겪었을까. 아픔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고난과 역경과 인내가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그곳에서 지혜와 열정과 배려와 존경과 순수를 배우고 자신을 연마해야 한다. 지금 나의 삶이 아슬아슬하다. 아지랑이처럼, 다시 피는 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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