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밥통 퇴출‘ 외면하는 충북도

2007.03.19 02:28:34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로 불렸던 영국의 해군에 관한 얘기다.

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던 1914년 당시에 영국 해군의 주력함은 62척이고, 병사는 10만명이며 이들을 관리하는 해군성의 공무원은 2천명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전쟁이 끝난 14년 후 다시 살펴보니 군함과 병사의 수는 3분의 1 정도가 줄었는데 해군성의 공무원만 3천600명으로 80%가량 더 늘어났다.

그후 제 2차 세계대전 전인 1935년에 해군성 공무원은 8천120명이었으나 20년쯤 뒤인 1954년에는 3만 3천790명으로 어마어마하게 늘어났다.

이런 조직적 생리를 연구한 영국의 역사·정치학자 파킨슨은 “조직에서 관리자의 수는 해야 할 업무의 양과는 관계없이 증가 한다”는 법칙을 발표했다.

이것이 대기업이나 관료조직 등을 점검하고 비생산적 요소들을 없애는 작업을 할 때 빠짐없이 거론되는 ‘파킨슨 법칙’이다.

공직사회가 조직을 늘리고, 조직이 늘어나면 부서별 책임자 등을 위한 직급이 늘어나 승진의 기회도 그만큼 늘어나게 된다.

까짓것 일이야 새로운 일을 만들어 내거나 기존 부서의 일을 서로 나눠 가지면 된다.

문제는 이렇게 증가한 공무원들이 무조건 정년까지 해마다 오르는 봉급을 받으며 버틴다는 것이다. 그래서 ‘철밥통’이라는 지극히 원색적인 별명까지 얻게 됐다.

그러나 일반 회사나 조직에서는 벌써 오래전부터 살아남기 위해 ‘무능하지도 게으르지도 않은 괜찮은 직원’들까지도 할 수 없이 ‘울면서’ 자르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삼팔선(38세 퇴직) 사오정(45세 정년) 오륙도(56세 넘도록 안 나가면 도둑) 등의 자조 섞인 유행어가 떠도는가 하면, 이와 연관된 실업난 때문에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 이구백(20대 90%가 백수) 등의 표현까지 들어가며 사는 세상이 됐다.

뒤늦게나마 올들어 공무원 조직에도 퇴출 바람이 남쪽 울산에서부터 불기 시작했다. 이 퇴출바람은 북상을 거듭해 경남·전남·광주시를 거쳐 대전 지역까지 흔들고 있다.

이 바람을 앉아서 기다릴 수가 없었던 서울시는 이미 3%를 퇴출시키겠다며 각 실·국별로 ‘살생부’를 제출받아 심사 중이다.

충북 지역에서도 음성군과 괴산군이 ‘철밥통 퇴출’에 나섰다.

업무 능력이 부족해 동료들이 함께 근무하기를 꺼리는 사람, 술 먹고 무단 결근을 자주하는 사람 등을 가려내 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퇴출 대상자로 찍히면 ‘하얀 와이셔츠 입고 책상에 앉아 시간 때우기’를 하지 못하고 주차단속·노점상 단속 등에 나가 고생하거나 심지어는 직권 면직당할 수도 있다.

이같은 공무원 퇴출 제도에 대해 행자부 장관도 “바람직 한 것”이라고 찬성했다.

그런데 문제는 충북지역 공무원 조직의 최상위에 있고, 여러 면에서 솔선수범이 돼야 할 도에서 아직까지 이에 관해 아무런 움직임도 없다는 것이다.

충북 도청에는 1천6백여명이 넘는 공무원들이 있고, 그 가운데는 벌써부터 “‘함께 일하기 싫은 사람을 적어내라’면 A 부서에 있는 누구와 B부서의 누구는 가장 먼저 찍힐 것”이라는 말들이 돌고 있을 정도로 퇴출돼야 할 대상자들이 있다.

그럼에도 최근 도에 “공무원 퇴출제도에 관한 구상이나 연구 중인 것이 있느냐?”고 취재하자 “아직은 아무 것도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작금 도가 최대 화두로 삼고 있는 ‘경제특별도’ 건설 역시 그 일을 하는 공무원에게 성패가 달린 만큼 인사 혁신을 통해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특히 도내 각 기초단체 및 산하 기관들의 맏형격인 도에서 먼저 공정하고 엄격한 퇴출제도를 시행하여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것에는 췌언이 필요치 않다.

박 종 천 /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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