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 전해 진 솔숲의 향기

2010.09.29 16:28:20

성재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사

9월 초 10여 일 간 러시아의 샹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에르미타주박물관을 다녀왔다. 거의 지구 반대편에 이르는 먼 곳을 다녀온 적이 없었던지라 매우 흥분되었는데, 첫날부터 시차적응이란 몸의 변화에 익숙하지 않아 며칠 동안 한 낮의 졸음을 이겨내느라 조금은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다. 그래도 다녀오고 나서 생각을 해보니 모든 것이 새로운 경험이었고, 개인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러시아의 제 2도시인 샹트페테르부르크는 제정 러시화의 근대화를 표방했던 표트르대제가 건설한 도시로, 공산주의 혁명의 본거지이기도 하여 공산주의 시절 레닌그라드로 불리기도 하였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도시라고 하는데, 오히려 발트해를 향해 흐르는 네바강을 두고 펼쳐진 도심은 무척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특히 강변을 따라 질서 정연하게 거리를 비추고 있는 수많은 가로등은 밤비행기 안에서 볼 수 있는 이 도시만의 장관이었다.

거대한 건물이 도심과 외곽을 점점 덮어가고 있는 우리의 적막한 대도시와는 뭔가 달라 보였으며, 특히나 에르미타주박물관을 중심으로 한 지역은 아직도 오래된 성당과 사원 등 17세기 이후의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매우 기억에 남는다.

러시아를 방문한 목적은 특별전에 출품되었던 우리 문화재를 다시 국내로 들여오기 위함이었다. 이번에 개최된 한국미술 특별전 "솔숲에 부는 바람, 한국미술 5000년"은 한-러 수교 20주년을 기념하는 문화행사로, 6월 1일부터 9월 5일까지 97일간 러시아의 국립박물관인 에르미타주박물관에서 열렸다.

전시는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통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유물들로 구성되었으며, 금령총 출토 기마인물형토기 등 국보 2건과 서봉총 출토 금관 등 보물 10건을 포함하여 총 237건 354점의 방대한 유물이 출품되었다.

이번 전시가 특별히 의미를 갖는 것은 세계 3대 박물관 가운데 하나인 에르미타주박물관에서 개최되었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떠나, 러시아뿐만 아니라 인근 서유럽에서도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와 우리 문화의 우수성과 독창성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커다란 기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여하튼 이번 특별전은 시작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더욱이 전시 장소가 에르미타주박물관에서 가장 큰 니콜라옙스키 홀로, 현재 에르미타주박물관 대부분의 특별전시가 이곳에서 열리고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에르미타주박물관측에서도 많은 관심과 애정을 보여준 전시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특별전이 끝나기 이틀 전 러시아로 들어갔기에, 휴일을 맞이하여 특별전의 여러 모습들을 살펴보고자 박물관을 둘러보는 시간이 생기게 되었다. 이번 전시에 대한 그곳 사람들의 대단한 열기를 느낄 수 있었는데, 전시 관계자에 따르면 무려 70여 만 명에 이르는 관람객이 우리의 문화재를 보고 갔다고 한다. 마침 이번 특별전이 열린 니콜라옙스키 홀 옆의 통로 쪽 전시 공간에 피카소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지만, 아마도 푸른 눈의 서구인들에게는 우리 문화의 독특함이 더 매력적이었나 보다.

관람객의 통계적인 수치를 떠나, 유물 하나하나에 관심을 갖고 진열장에서 발길을 쉽게 옮기지 못하는 관람객들을 보면서 마음이 벅차고 뿌듯하기만 하였다. 그리고 알타이 문명과 꼭짓점을 찾을 수 있는 고대의 화려한 유물, 부처의 온화한 미소, 종이에 담백하게 그려진 회화, 개성 강한 도자기, 돌에 담겨진 아름다움 등을 통해 그 곳 사람들에게 전해진 솔숲의 향기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하는 궁금증도 들었다.

전시가 종료된 후 가지고 들어 올 유물의 포장작업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에르미타주박물관 직원들의 우리 문화재에 대한 찬사는 끊이지 않았다. 그러하기에 그 많은 유물을 포장하면서도 힘든지 모르고 무사히 작업을 마쳤다.

귀국하는 날도 역시 밤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머무르는 동안 줄곧 다가왔던 이번 특별전의 감흥은 기내에서도 가라앉지 않고 늦은 밤의 피곤함을 달래 주었다. 알지도 못했던 이 곳을 언제 다시 찾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행여나 다시 찾을 때 까지 솔숲의 향기가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 역시 샹트페테르부르크의 아름다운 야경은 잊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이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

<저작권자 충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PC버전으로 보기

충북일보 / 등록번호 : 충북 아00291 / 등록일 : 2023년 3월 20일 발행인 : (주)충북일보 연경환 / 편집인 : 함우석 / 발행일 : 2003년2월 21일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무심서로 715 전화 : 043-277-2114 팩스 : 043-277-0307
ⓒ충북일보(www.inews365.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by inews365.com, I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