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녀를 끼고 놀은 결과는, 충청도감사 유운

2010.10.28 18:02:25

조혁연 대기자

조선시대 기녀들은 기생(妓生), 은근자(殷勤者), 탑앙모리(搭仰謀利) 등 3등급으로 분류됐다. 이중 기생은 어떤 모임에서 가무로 흥을 돋구는 여자, 은근자는 남들 몰래 매춘하는 부류, 탑앙모리는 매춘 자체만을 업으로 삼는 여성을 일컫는 말이었다.

기녀들에게는 이른바 수모법(隨母法)이 엄격하게 적용됐다. 즉 어머니가 기녀이면 그 딸도 운명적으로 기녀가 돼야 했다. 이들의 공식적인 활동기간은 15~50세까지로, 쉰살이 넘으면 퇴기(退妓)라고 불렀다.

기녀와 관련해 해어화(解語花)라는 자못 운치있는 표현이 있다. 직역하면 '말을 알아듣는 꽃'이라는 뜻이다. 당시 양반들은 자신의 시와 문장을 알아주는 기녀를 그렇게 불렀다. 육체를 탐닉하다 보니, 되레 기녀들에게 아부하는 표현으로 보이기도 한다.

조선시대 고위관료 중 기녀와 관련해 스캔들을 자주 빚은 인물로 유운(柳雲·1485~1528)이 있다. 그가 충청도관찰사로서 우리 고장 청주, 진천 등지를 순회하던 중 기녀를 끼고 놀았던 모양이다. 당시 관찰사 직무공간인 감영은 공주에 위치했다.

'큰 눈이 내렸다. 조계(朝啓)를 들었다. 지평 이연경(李延慶)이 아뢰기를, "듣건대, 충청감사 유운(柳雲)이 갈려올 때 청주 기녀들을 데리고 진천으로 가서 누각 위에 올라 풍악을 했다 합니다. 지금 조정에서 새로 여악(女樂)을 폐지하여 자전께도 쓰지 않으려고 하는데, 운이 한 도의 장관으로서 감히 이러하였으니 아랫백성들이 어디서 보고 교화되겠습니까. 바라건대 파직하여 그의 잘못을 알도록 하소서" 하고…'-<중종실록>

기녀와 관련된 기록은 또 다른 곳에서도 만날 수 있다. 이번에는 유운 자신이 직접 한시를 지었다. 시간적인 배경은 그가 충청도관찰사로 부임하던 첫날밤이다. 당시 관료사회 풍속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도 있다.

'공산 태수 위엄에 질려(公山太守怯+力威稜) / 어사의 풍정을 몰라 보네(御史風情識未曾) / 빈 관에 사람 없이 긴긴 밤을 지나고 보니(空館無人消永夜) / 남쪽으로 행차한 맛이 중보다 더 싱거워라(南來行色淡於僧)'-<연려실기술>

정황상 부임지 첫날밤을 관례대로 기녀와 함께 보낼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내용이다. 기묘사화는 남곤 등 훈구파가 이른바 '주초왕위'((走肖爲王·조광조가 왕이 되려 한다) 나뭇잎 조작사건을 통해 조광조 등 신진사림을 공격하면서 일어난 사건이다.

유운은 남곤(南袞·1471~1527)의 도움으로 대사헌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기묘사화 때 사림파 개혁 방향이 맞다고 생각, 조광조 구명운동을 적극 전개하다 도리어 파직당했다. 사료는 그가 '울분 달래려고 술을 한없이 마시다가 창자가 터져서 죽었다'(기묘록보유)다고 적고 있다.

호방한 성격에 풍류를 즐겼던 그가 충청도관찰사 시절에 우리고장 제천 청풍도 찾았던 모양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청풍군조에 그의 시가 실려 있다. 정황상 시의 배경은 지금의 제천군 한수면 일대로 보여진다.

/…/ 여울 소리가 귀를 흔드니 찬 것이 베개에서 나고 / 산 기운이 창에 가득하니 푸른 것이 병풍이 되었다 / 비가 씻으니 갈매기의 모래는 밝기가 눈 같고 / 달이 잠기니 고기잡이 불이 어지럽기가 반딧불 같다 / 무단히 만리의 외로운 배 피리 소리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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