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강 뱃놀이 사건, 충청감사 함부림

2010.12.28 20:32:05

조혁연 대기자

조선시대 때 각 도에 파견된 지방 행정의 최고 책임자는 관찰사였다. 달리 감사(監司)·도백(道伯)이라고도 불렀다. 관찰사 명칭은 시대에 따라 다소 변화했다. 조선 초기에는 도관찰출척사(道觀察黜陟使) 또는 안렴사 등으로 불렸다.이것이 관찰사로 굳어진 것은 세조 때이다.

도관찰출척사 시절의 충청도 최고 책임자 한 명으로 함부림(咸傅霖·1360∼1410)이라는 인물이 있다. 조선시대 대 8도 관찰사를 모두 역임한 인물은 반석평(潘碩枰·?~1540)과 함부림 딱 2명이다.

반석평에 대해서는 전회에 소개한 바 있다. 우리고장 음성 원남에 묻힌 인물로, 반기문 현 유엔 사무총장이 그의 16세 후손이 된다. 함부림은 우리고장 인물은 아니다. 강릉 인물로 이성계 사람으로 분류된다.

함부림은 충청도 도관찰출척사로 근무하면서 여기저기 적지 않은 에피소드를 만들었다. 하루는 속리산이 있는 보은현을 방문했던 모양이다. 세속과 떨어져 있는 속리(俗離) 세계를 그리고 있다.

'함부림의 시에, "계원(鷄園)의 한가로운 일월(日月)이요, 안탑(雁塔)에 구름과 연기 자욱하네. 우연히 삼청동(三淸洞)에 들렸더니, 세상일 시끄러운 것 모두 잊었네" 하였다.'-<신증동국여지승람 보은현 기사>

본문에 등장하는 '계원'은 인도에 있는 절 이름, '안탑' 역시 인도의 왕사성(王舍城)에 탑을 일컫고 있다. 삼청동은 속리산 안에 있는 지명은 분명하나 지금 어디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의 행정처리는 항상 단호함이 돋보였다. 박안의라는 인물이 단양강에서 '하나'라는 기생과 뱃놀이를 하다 배가 전복되면서 기생이 익사했다. 그러자 함부림은 그를 즉각 파직시킨다.

'지단양군사 박안의(朴安義)를 파직하였다. 처음에 안의가 청풍군사 황보전·강릉판관 김질·제주감무(提州監務) 유여 등과 더불어 단양강 위에서 배를 띄우고 연음(宴飮)하다가, 배가 기울어져서 기생 하나와 아전 하나가 물에 빠져 죽었다. 관찰사 함부림이 이를 안핵하여 태형을 쳐서 환임시켰다.'-<태종실록>

본문 중 안핵은 자세하게 조사하는 것을, 환임은 본래 있던 곳으로 다시 임명하는 것을 말한다. 단양강은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표현이나 정황상 도담삼봉 일대로 여겨진다.

그도 남자인지라 한 기생을 사귀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사랑은 절제된 사랑이었다. 고개 정상에서 연인과 헤어질 때 마침 근처에 커다란 돌(石)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함부림은 "만남도 이별도 모르는 돌인 네가 차라리 좋아 보인다"고 읊었다.

'돌아 너는 어느 때 돌이던고(汝石何時石) / 우리들은 이 세상 사람들이다(吾人今世人) / 너는 정다운 사람과 이별한 쓰라림도 알지 못하고(不知離別苦) / 홀로 서서 그 몇 번이나 봄을 보냈더냐(獨立幾經春) 하였다.'-<태종실록>

태종은 그가 죽자 업무를 3일 동안 중단하고 애도했다.

'일찍이 굽히거나 흔들리지 않으니, 부내(部內)가 두려워하고 복종하였다. 죽으니 나이 51세였다. 임금이 슬퍼하여 철조(輟朝)하기를 3일 동안 하고, 중사(中使)를 보내어 조제(弔祭)하고 시호를 정평(定平)이라 하였다.'-<태종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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