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마을 늙은이라고 일러주오, 보은 김태암

2011.02.13 19:01:07

조혁연 대기자

전회에 구수복이라는 인물을 소개했다. 그는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이조좌랑이라는 직책에서 파직되어 우리고장 보은 지역을 일시적으로 찾았다. 지면 관계상 모두 소개하지 못했지만 이 대목에는 곡절이 더 존재한다.

그가 보은 속리산 일대를 찾은 데는 장인의 권유가 먼저 있었다. 문과방목을 보면 그의 장인은 이수(李穗)라는 인물로, 벼슬이 정3품에 이르렀다. 문과방목은 조선시대 문과 합격자들의 신상을 기록한 사료를 말한다. 당시 구수복의 장인은 보은에 별장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기묘년에 공이 이조 좌랑으로 파직되자 돌아갈 곳이 없었다. 그의 장인이 딱하게 여겨 보은(報恩)에 있는 별장에 살도록 했더니…'-< 연려실기술>

그러나 구수복의 장인 별장 처가살이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요즘 명절 풍속도의 하나로 '장인과 사위가 자주 다툰다'는 내용이 신문 지상에 보도된 적이 있다. 여성들이 경제전선에 뛰어들면서 처가의 발언권이 강해진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같은 현상은 아니지만 둘 사이에도 비슷한 다툼이 있었던 모양이다.

'얼마 후에 농장의 종이 싫어해서 장인에게 헐뜯기를, "좌랑이 농막을 차지한 후로 종들을 혹사하여 장차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하니, 장인이 살피지도 않고 노하여 공을 쫓아 냈다. 이때는 겨울철이었는데 공이 수척한 말과 약한 종 하나를 데리고 길을 떠났으나 나와 갈 곳이 없어 행색이 비참했다.'-<연려실기술>

이후 만난 보은 토박이가 전회에 밝힌 김태암(金泰巖·1477∼1554)이라는 인물이다. 연려실기술의 저자 이긍익(李肯翊)은 사림파에 대해 시종 우호적인 서술 자세를 견지했다. 이 때문인지 그는 이 부분을 매우 자세하면서 훈훈하게 적었다.

'호걸 남자는 즉시 말에서 내리기를 청하여 눈 위에 털 담요를 깔고 마주 앉아 이야기하면서 꿩을 굽고 술을 부어 권하면서 속마음을 털어놓았는데 마치 평소 교분이 있는 것 같았다. 그 후 더불어 함께 그의 집으로 갔다고 한다.'-<연려실기술>

인용문 중 호걸남자는 김태암을 일컫고 있다. 정황상 김태암이 사냥 마친 후 돌아오는 길에 장인에게 쫒겨난 구수복을 만난 것으로 보인다. 이후 김태암은 구수복에게 집 등을 제공하는 등 재정 후원자 역할을 하게 된다.

'구수복이 파면된 후 갈 데가 없어 보은 산간에서 방황하는 것을 김태암이 집 한 채와 밭 수십 이랑을 주어 공의 부인과 그 세 아들이 지금까지 편히 사니, 온 고을이 의사(義士)로 일컬었다.'
 
이 대목은 약간 궁금한 대목이 있다. 왜 김태암이 초면이랄 수 있는 구수복에게 이렇듯 큰 호의를 베풀었나 하는 점이다. 사료의 행간을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김태암은 보은출신의 기묘명현 김정(金淨)과 친분이 있었고, 구수복 또한 김정과는 도의로 사귄 관계였다. 그렇다면 김태암과 구수복은 '친구의 친구' 관계가 된다. 김태암은 토호였지만 유교적 소양도 깊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의 한시가 전해진다.
 
'그대 가는 길은 평평한 큰길이구려(君去平平大道通) / 바위 위에 남아 있는 나의 뜻 그지없어라(分離岩上意無窮) / 서울 벗들이 나의 소식 묻거든(洛中故舊如相問) / 산마을 늙은이라고 일러주오(爲報山村一老翁)'-<기묘록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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