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 미·일 거쳐 한국 무대 밟기까지

2011.12.13 14:42:41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는 것이 꿈"이라던 박찬호(38)가 드디어 한국 무대를 밟게 됐다. 13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열린 한국야구위원회(KBO) 2011년 제7차 이사회에서는 박찬호에 대한 특례 적용을 허용하기로 했다.

이사회는 2007년 '해외 진출 선수 특별지명'때 유일하게 특별지명권을 갖지 못했던 한화가 당시와 동일한 조건으로 어떠한 희생 없이 박찬호를 영입할 수 있도록 했다.

박찬호가 미국으로 떠난 것은 1994년. 박찬호는 120만 달러를 받고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계약하며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 구단 유니폼을 입었다.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고 입단 첫 해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은 박찬호는 1994년, 1995년 총 4경기에 등판하는데 그쳤다.

그러나 1997년 14승 8패 평균자책점 3.38을 찍은 것을 시작으로 5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기록하며 메이저리그 정상급 투수로 거듭났다.

박찬호는 2000년 18승 10패 평균자책점 3.27, 2001년 15승11패 평균자책점 3.50을 기록하며 전성기를 보내는 등 지난해까지 17년을 미국에서 뛰었다.

17년 동안 다저스, 텍사스 레인저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뉴욕 메츠, 휴스턴 애스트로스, 필라델피아 필리스, 뉴욕 양키스,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를 거친 박찬호에게 전성기도 있었지만 마이너리그 강등, 부진 등 여러 시련도 있었다.

시련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틴 박찬호는 지난해 10월2일 메이저리그 통산 124승째를 따내 아시아 투수 최다승 기록을 갈아치웠다.

하나의 이정표를 세운 박찬호는 지난 시즌을 마친 뒤 메이저리그를 떠났다. 일본프로야구 오릭스 버펄로스와 1년 계약을 맺고 일본 무대에 진출했다.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6월말 왼 허벅지 근육이 파열되는 부상을 당한 박찬호는 이후 1군 경기에 단 한 차례도 등판하지 못했고, 1승5패 평균자책점 4.29의 부진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시즌이 끝난 뒤 오릭스로부터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은 박찬호는 한국행에 대한 강력한 바람을 드러냈다. 박찬호는 이전에도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싶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걸리는 것이 있었다. 박찬호는 '1999년 1월1일 이전 해외로 진출한 선수는 복귀시 반드시 신인 드래프트를 거쳐야 한다'는 규약에 발목이 잡혔다.

박찬호의 고향팀인 한화는 영입 의지를 보이며 KBO에 박찬호에게 특례를 적용해 달라고 요청했다.

2007년 '해외 진출 선수 특별지명' 때 유일하게 특별지명권을 갖지 못했던 한화는 이를 이번에 행사하면서 아무 조건 없이 박찬호를 영입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이사회가 박찬호에 대한 특례 적용을 허용하면서 내년부터 박찬호가 한국에서 뛰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됐다.

KBO 이사회는 "해외에서 그간 활약하면서 한국의 위상을 높인 점, 아시안게임과 WBC에서 대표 선수로 활약하면서 한국의 위상을 높인 점, 국내 프로야구를 위해 노력한 점, 한화가 2007년 특별 지명에서 당시 아무 선수도 지명하지 않았던 점 등을 검토했다"며 박찬호의 국내 복귀를 허용한 이유를 설명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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