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의 육아일기도 쓰다, 이문건

2011.12.13 16:06:06

조혁연 대기자

이문건(李文楗·1494~1567)은 묵재일기 외에 양아록(養兒錄)의 저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양아록은 글자 그대로 '아이 양육에 대한 기록'이라는 뜻으로, 이상주 박사가 발굴·소개하면서 일반에 알려졌다.

내용은 할아버지 이문건이 손자 '숙길'(淑吉)의 출생~16살 기간의 성장과정, 질병내용, 공부시키는 과정 등을 한시 형태로 적었다. 전체 분량은 60여쪽으로 이중 성장과정과 질병·사고와 관련된 것이 각 16건, 교육에 관한 것이 8건 등이다.

보통의 경우 육아일기는 부모가 아이를 대상으로 쓴다. 그러나 양아록은 특이하게도 할아버지가 손자를 대상으로 썼다. 가정사의 굴곡이 많았다.

이문건은 충북 괴산 태생 안동김씨 부인(돈이)과 사이에 6명의 자녀를 얻었다. 그러나 '온'이라는 아들과 '순정'이라는 딸만 성인으로 성장하고 나머지는 일찍 병으로 잃었다. 뿐만 아니라 아들 '온'도 이문건 나이 64살 때 '숙길'을 포함해 1남3녀를 남긴 채 병사했다.

이문건은 가문의 대가 끊길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였고, 때문에 하나 남은 친손자 '숙길'에게 집착하게 된다. 참고로 숙길의 셋째 누이는 동래부사 순절도로 유명한 송상현의 부인이 된다.

이문건은 손자 '숙길'이 태어나기 전부터 부산을 떨었다. 손자가 무병장수해 가문의 제사를 잘 모실 수 있는지 여부를 계속 점쟁이에게 묻는다. 이와함께 숙길이에게 젖을 줄 유모(유모)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이는 점쟁이가 '친모가 직접 양육하는 것보다 유모로 하여금 기르게 하는 편이 더 낫다'고 말해줬기 때문이었다. 이런 이문건은 대를 이을 손자 숙길이가 태어나자 해시계를 보고 시간까지를 정확히 적었다. 그리고 그 기쁨을 한시로 남겼다.

'천리는 生生不息이라더니 과연 아직 다하지 않아 / 어리석은 아들이 자식을 얻어 가풍을 잇게 했다 /…/ 오늘 저 어린 손자 기쁜 마음으로 바라보며 / 노년에 너의 성장하는 모습 지켜보리라 / 귀양살이 쓸쓸한 차에 좋은 일이 생겨 / 나 혼자 술 따라 마시며 자축하네.'-<양아록>

앞서 점쟁이가 유모를 언급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문건은 점쟁이 말을 그대로 실천하나 여기에는 다소의 곡절이 있다. 처음 숙길이에게 젖을 물린 노비는 '눌질개'(訥叱介)라는 여종이었다.

그녀는 마침 어린 아이를 키우기 있었기 때문에 젖이 잘 나왔다. 그런데 얼마 후 젖이 나오지 않는다며 유모노릇 하기를 거부했다. 이에따라 두 번째 유모로 차출된 노비가 '春非'(춘비)라는 여종이었다.

그녀는 젖도 잘 나오고 숙길이를 울리지 않는 등 이문건 마음을 흡족하게 했다. 그러나 '춘비'가 집밖으로 이틀간 쫓겨나는 사건이 발생한다. 노비는 항상 피곤한 몸일 수밖에 없다. 양아록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야간에 잠자기가 급하여 아이 얼굴을 짓누르고 코를 골아대니, 아이가 놀라 울면서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때문에 춘비를 이틀 동안 집 밖으로 내쫓았다.'-<양아록>

 이후 춘비는 돌아와 숙길이에게 젖을 잘 물렸지만, 얼마안가 병을 얻어 죽게 된다. 그러자 이문건은 관을 구해 장례를 치러주는 등 춘비가 숙길의 유모였던 점에 대해 마음으로 예를 갖추는 모습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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