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에게 모든 희망을 걸다, 이문건

2011.12.15 17:33:43

조혁연 대기자

전회에 이문건(李文楗·1494~1567)이 대가 끊길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손자 '숙길'(淑吉)을 봤고, 이후 점쟁이의 말에 따라 친모가 아닌 유모(乳母)에게 젖을 물리게 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양아록은 시간 흐름에 따라 발육과 유년기 학습 과정도 시형식을 빌려 매우 세밀하게 표현하고 있다. '始立', 즉 '일어서기를 시작하며'라는 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두 손으로 다른 물건 잡고 / 양다리에 의지해 쪼그리고 앉는다 / 한 달을 이와 같이 하더니 / 점점 제 스스로 오금을 펴고 일어선다 / 동지가 되어 양의 기운이 다시 생기려 하니 / 이날에 맞추어 네가 일어서는구나.'-<양아록>

앞서 언급한대로 숙길이에 대한 할아버지 이문건의 기대는 일반의 상상을 크게 웃도는 것이었다. 이문건은 숙길이가 유교적 소양을 지닌 성인으로 성장하기를 간절히 희망했다. 조선의 문신답게 공자를 이상형으로 삼았다.

'너의 조급하고 경망한 마을을 제거하고 / 성현의 발자취를 쫓아야지 / 마음에 잘 간진해주고 상실하지 않는다면 / 이것은 孔子를 잘 배우는 것이다 / 네 자신에게 잘 머무르게 하면 어찌 조상의 복을 받을른지 알겠는가 / 亨達은 정말 운명에 달려있고 / 富貴는 얻기가 어렵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바람에도 불구, 숙길이의 유년시절은 보통의 개구쟁이와 거의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이문건은 손자가 또래의 동네 꼬마들과 어울려 노는 모습을 걱정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아이는 놀기를 좋아하며 / 한 때도 쉴 새가 없도다 / 煩熱이 날 정도로 내달리는데 / 보통아이들과 덩달아 함부로 다름질친다 / 언제 정신과 식견이 성장하여 / 제몸 제가 보호할 줄 알까 /…/'-<〃>

결국 공부에 의한 입신양명만을 생각하고 있던 이문건은 공부 안 하는 손자에게 회초리를 댔다. 그리고 그후의 심정을 마치 김홍도의 그림 '서당도'를 연상시키 듯이 적어놨다.

'10여대를 때리고 차마 더 때리지 못하고 / 그만 놓아주자 오랫동안 엎드려서 우는데 / 늙은이 마음 또한 울고 싶어라 /…/ 언제 아이의 지혜가 밝아져 / 때가 되면 스스로 허물을 알게 될까.'-<〃>

잔병치레가 많았던 '숙길'이도 이제 지금으로 치면 중학생 나이로 성장했다. 그러나 당시로 치면 거의 성년에 해당하는 나이다. 이런 숙길이가 할아버지 이문건과 한문해석을 놓고 속칭 '맞장뜨는 사건'이 발생한다.

양아록이 숙길이 나이 15살 때 한문독해를 둘러싸고 조손(祖孫) 간에 충돌하는 내용을 적어놨다. 다음 내용의 차이를 잘 비교해 보기 바란다. 할아버지 이문건은 '(중국) 한나라의 정치는 옛날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끝났다는 것이다'라고 해석했다.

반면 손자 숙길이는 '한나라의 정치는 끝내 옛것에 미치지 못했다'라고 해석했다. 누가 정확한 독해를 했는지 쉽게 구별이 가지 않는다. 다만 숙길이의 자아의식이 성장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지금까지의 진행은 이문건 유배지 성주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러나 숙길이는 할아버지 이문건이 74세로 돌아가자 장례를 모신 후 농장이 있고 아버지 이온 산소가 있는 괴산 문광면으로 올라왔다. 양아록이 이상주 박사에 의해 괴산에서 발견된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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