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솔불 아래에서 공부하다, 영동 윤상

2012.03.15 16:13:46

조혁연 대기자

전회에 우리고장 영동을 소개할 때 윤상(尹祥·1373∼1455)이라는 인물의 표현을 인용한 바 있다.

'산과 물이 맑고 기이하다. 윤상(尹祥)이 금유(琴柔)에게 보낸 글에, "영동은 산수(山水)가 맑고 기이해서 시(詩) 짓는데 도움을 받을 만한 것이 진실로 많다" 했다.'-<신증동국여지승람>

윤상은 경상도 예천군의 향리인 윤선(尹善)의 아들로 태어나서 과거를 통해 양반 신분이 된 인물다. 과거 합격자 명단을 적어 놓은 방목(榜目)을 보면 그는 태조 때 진사와 생원시에 합격한 후 문과에 급제했다.

조선시대에는 형식상 서얼을 제외하고 양인 이상이면 누구나 과거에 응시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과거 준비에는 적지 않은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하고 또 오랜 기간 동안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평민(양인)이 합격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고려 때 향리는 한 지역의 지배계급이었다. 그러나 조선시대 향리(아전)는 수령의 보좌역으로 중인에 해당했다.

윤선이 이런 환경에서 오늘날 행정고시에 해당하는 문과에 합격했다는 것은 남다른 노력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사료에 이와 관련된 표현이 적지 않이 등장한다.

'공은 자질이 아름답고 총명이 뛰어나게 태어났다. 향리로서 고을 일을 맡아 볼 적에 고된 사무를 보면서도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으며, 오고갈 때 반드시 관솔을 따서 관사 은밀한 곳에 두었다가 밤에 글 읽을 때 썼다. 문과에 급제하여…'-<연려실기술>

인용문 중 관솔은 송진이 많이 엉긴 소나무의 가지나 옹이를 말한다. 한자로는 송명(松明)으로, 불이 잘 붙기 때문에 등불을 대신하기도 했다. 윤상은 그 관솔불 밑에서 공부했다. 마치 한자 숙어 '형설지공'(螢雪之功)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그는 영동 외에 황간현감을 역임하기도 했다. 해동잡록이라는 고문헌은 이와 관련해 '일찍이 황간 태수가 되어 있을 때, 김숙자(金淑滋)는 먼 길을 걸어다니며 주역을 배워 음양이 변화하는 수(數)와 원시요종(原始要終)의 설(說)을 깊이 탐구하여, 이로 하여 역학이 크게 밝아지게 되었다'라고 썼다.

인용문 중 '원시요종'은 일의 시초를 궁구하고 결말을 알아낸다는 뜻으로 학문하는 자세를 말한다. 그리고 김숙자는 사림파의 시조인 김종직의 아버지다.

인용문대로라면 그 김숙자가 황간현감으로 있는 윤상에게서 성리학을 배운 것이 된다. 이렇듯 윤상은 이름이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영남 사림의 산파자였다.

그의 성리학적 해박성에 대해 이긍익은 연려실기술에서 '조선개국 이래 사범(師範)의 제일'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사범'은 가르치는 자의 모범이 된다는 뜻이다.

'공은 실오리처럼 올올이 가늘게 분석하여 일러 주되 종일토록 근면하여 피곤한 줄을 몰랐다. 그시대의 달관(達官)과 문인(聞人)이 모두 그의 제자였으니, 조선 개국 이래 사범(師範)으로서 제일이었다'-<연려실기술>

그가 낙향하자 문종(文宗)은 그곳의 관아를 통해 달마다 음식물을 제공했다. 이처럼 퇴로(退老)한 재신(宰臣)에게 임금이 음식물을 하사하는 관습은 이때 처음 생겨났다. 그는 매우 장수해 83살까지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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