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 선생과 사회악

2013.04.23 17:22:33

조선후기 실학자 이익 선생은 성호사설(星湖僿說)이란 책을 펴냈다. 성호(星湖)는 그의 호이다. 사설(僿說)은 자질구레한 말이란 뜻이다. 제목에서부터 그의 겸손함이 엿보이는 이 책은 40년 동안 쓰여 진 글이다.

### 4대 사회악 최대 관심사

여기서 당시 나라를 망치는 '6가지 좀'에 대해 역설하는 부분이 나온다. 노비제도, 과거제도, 양반제도, 미신, 승려, 게으름이 그것이다.

그 시절 사회의 근간을 흔들었던 '6가지 좀'이 있었다면 현재의 우리에겐 초미의 관심사가 된 '4가지 사회악'이 존재한다.

'4가지 사회악'이란 성폭력, 학교폭력, 가정파괴, 불량식품을 말한다. 대저 이들은 인간의 삶의 근간을 이루는 가정과 학교의 파괴이며, 기본적 도덕의 붕괴를 가져오는 사악한 것들이다. 악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의 도덕적 기준에 어긋나 나쁜 것을 의미한다.

박근혜 정부가 4대 사회악 척결에 나섰다.

현행 식품위생법은 형량상한제만 적용하고 있을 뿐 상당수 다른 법률과 마찬가지로 최저형량이 명시돼 있지 않다. 그만큼 불량식품에 대해 정부의 근절의지가 강화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다. 4대 사회악 근절을 위해 관련부처·기관의 칸막이를 없애고 국무총리실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 유기적인 협조 관계를 구축키로 했다.

충북경찰도 성폭력·학교폭력·가정파괴범 및 불량식품 근절을 위한 4대 사회악 근절 추진본부와 성폭력 특별수사대를 구성했다. 이후 4대 사회악 근절에 적잖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하지만 현 정부의 의지와는 달리 4대 사회악 근절책이 아직 연착륙하지 못한 듯싶다. 곳곳에서 허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학교 내 크고 작은 사건이 끊이질 않으면서 학부모와 학생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지난달에 청주시 상당구 한 초등학교 운동장. 이 학교 3학년생인 A(10)양은 수업을 마친 뒤 친구 한 명과 운동장 한편에서 놀고 있었다.

그때 낯선 남성 한 명이 다가와 A양의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현장을 벗어난 A양의 친구가 부모에게 이 사실을 알리면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김모(53)씨를 붙잡았다.

초등학교 인근에 사는 지체장애 2급인 김씨가 A양에게 접근, 성추행할 때까지 저지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충북도교육청은 도내 478개 초·중·고교를 대상으로 외부인에 대한 학교 출입증 발급을 의무화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외부인의 출입 통제는 여전히 허술하다.

학교 내 안전사고와 폭력 사건을 예방하기 위해 배치된 '배움터 지킴이' 역시 제 구실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감시 기능을 기대할 수 있는 안전장치 CCTV도 문제다. 현재 도내 초·중·고교에 설치된 CCTV는 모두 6천478대(3월말 기준)다. 적지 않은 숫자지만 단순한 녹화 기능을 넘어 상시 모니터링까지 가능한 곳은 충주, 제천, 진천 3곳뿐이다.

통합관제센터를 운영하는 지방자치단체의 협조가 이뤄진 곳만 지난해부터 모니터링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 도덕적 해답이 먼저다

4대 사회악 근절책이 탁상행정에 머무르지 않으려면 소통부터 해야 한다. 전문가와 현장에 있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충실하게 들어야 한다. 현실과 유리된 정책은 결코 실효를 거둘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전 정부들도 이런 범죄를 없애려고 했지만 성공하지 못한 이유를 곱씹어봐야 할 것이다.

경찰서 등 일선 기관에서는 4대 악 척결 캠페인에만 급급해선 안된다. 환부를 정확하게 도려내는 정책이 제때 나오지 않으면 국민들에게 피로감만 주고 끝날 수 있다.

피부로 절감할 수 있는 대책이 아니면 사후약방문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유야무야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4대 사회악 근절은 제도권과 법의 영역이 아닌 도덕적 영역에서 근본적 해답을 구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250년 전 이익 선생이 들려준 사회악에 대한 '사설(僿說)'이 우리에게 메아리쳐 '단상(斷想)'으로 다가만 오는 것이 더욱 아쉽기만 한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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