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결혼 그리고 축가

2013.05.01 15:08:39

박이태

청주성모병원 종합검진센터

요즘 딸 바보라는 말이 유행이라고 한다. 본래 의미인 속 깊고 은근한 부성애 대신 좀 더 적극적으로 겉을 드러내 보이는 부성애를 뜻한다. 나에겐 아들, 딸 남매가 있다. 아들은 비교적 별 무리 없이 엄마의 전폭적인 신뢰 아래 자라 현재 유수한 회사에 잘 다니고 있다.

반면 딸은 어려서는 못나서 한때는 곰곰이 견적을 빼 본 적도 있었다. 공부도 뒷전이어서 바둥바둥 억지로 끈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였고 아내가 몇 차례 학교에 불려간 적도 있었다.

그런데 마음 씀씀이와 감성적인 면은 날 닮아 아내의 옹호를 받는 아들 보단 나에겐 딸애가 항상 애잔한 느낌으로 와 닿곤 하였다. 모친께서 "걱정마라 애들은 커가면서 열 번도 더 변한다" 하셨는데 과연 대학생이 되더니 키도 늘씬해 지고 얼굴도 집안 여인네 중 최고의 미모를 자랑하게 되었다.

영어 complex가 있어 혼자 걱정을 많이한다 싶더니 유학을 간다고 하였다. 내 딴에 한국 학생이 가장 적을 것으로 생각되는 Island를 추천해서 그 곳에 가게 되었다. 도착 후 첫 전화가 "아빠, 여기도 한국애들 많아요." 였다. 유학 결과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자신감이었다.

다행히 외국계 consulting회사에 들어갔고, 바쁘다 또 힘들다 하면서도 직장 band의 vocalist로도 활동하고 있다. 연애는 C학점이나 줄까 할 만큼 학생 때 보여준 것을 답습하더니 소개팅으로 만난 지금 사위와 밀고 당기기를 제법 하였다.

그 때 내가 주례사에서 늘 하는 부부싸움 오계명을 일러준 적이 있다. 일은 일단 싸워라이다. 괜히 작은 싸움거리를 묵혀두다간 큰 싸움이 되어 사생결단으로 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이기려 하지마라 이다. 지는 것이 결국 이기게 된다. 삼은 삼가할 말은 삼가하라는 것이다. 서로의 집안 식구 들의 험담은 특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사는 사과는 먼저 하라이다. 오는 오분 안에 끝내라이다. 긴 부부 간의 행로에서 싸움은 쉼표에 불과한 것이지 마침표가 되서는 안 될 것이다.

아무튼 우여 곡절 끝에 지난 3월 16일에 결혼식이 잡혔고 양가가 천주교 집안이라 성당에서 식을 올리기로 하였다. 그런데 결혼식 한달 전쯤 딸애가 축가를 불러 달라는 게 아닌가.

늦은 나이에 시작한 성악 공부가 1년 여 되어 한참 열이 오를 때였고, band vocalist인 딸이 인정해 주고 또 딸애의 마음이 가슴에 전해와 뿌듯하였다. 겉으론 "아빤 울렁증도 있고 네 결혼식때 노래를 부르면 울컥 할 것 같은데..." 하고 짐짓 발을 뺐다. 딸애는 "아빤 잘 할 거예요. 꼭 해주세요." 하였다. 선생님이 골라 준 곡으로 맹훈련에 들어 갔고 울컥하지 않게 mental training도 하였다.

결혼 보름 전 함이 들어왔다. 정말 우리 딸이 시집을 가는구나 하고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처음인지라 절 받은 후 머쓱해져 있는데 갑자기 아내가 "장인이 한 말씀 하셔야지요" 하였다. 식탁보 이야기와 麗澤相注란 사자성어를 들어 말해 줬다. 식탁보는 혼자 펼 칠 경우에는 아무리 잘해도 틀어질 수 밖에 없는데 둘이하면 반듯하게 펼칠 수 있다는 의미이고, 이택상주는 두 연못이 맞닿아 있으면 서로 물을 대 주어 어느 한 쪽이 마르는 일이 없으니 서로 떨어짐이 없이 서로의 생각과 사랑을 주고 받아라는 의미였다.

결혼식 날은 주님의 은총으로 볕이 따사롭고 바람도 없었다. 네분 신부님들의 집전 하에 신부입장도 잘하였고 혼례미사도 경건하게 잘 진행되나 했는데 막상 성혼선언문을 읽어야 할 즈음에 딸애가 울음이 북받혀 읽지 못하는게 아닌가. 순간 나도 눈물이 나고야 말았고 급기야는 "읽어야 시집갈거 아냐." 하고 말하기 조차 하였다. 축가 때 감정 조절에 문제가 올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불현 듯 스쳐 갔다.

축가 순서가 되어 2층 성가대석으로 조용히 올라갔다. 갑자기 조용해 지면서 모두 나만 쳐다보는 것 같았고, 가슴은 방망이질 쳤다. 진정해지기 위해 간단한 인사말을 하였다.

"네분 신부님들의 집전 하에 혼례미사가 조용하고 경건하게 치뤄져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동안 많은 고생을 한 아내에게 이 자리를 빌어 고마움을 나타내고 싶습니다. 아내는 피부에 투자를 했어요.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뒷탈이 있을 것 같아 목에 투자를 했습니다. 축가를 부르겠습니다." 순간 다들 와 하고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럭저럭 숙연한 분위기 속에 축가가 잘되가고 있는데 끝날 무렵 제대 앞에서 눈물을 훔치는 딸애의 모습이 갑자기 줌인이 되듯 눈에 한가득 들어 왔다. "이 축가가 끝나면 내 딸이 아빠를 떠나는 구나"하는 생각에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오늘 너희를 축복하-울컥-노라." 간신히 이어서 "내가 너를 축복하-울컥 --" 식장은 온통 울음바다가 되었다 한다.

아들이 나중에 "아버지, 축가도 잘 불렀지만 마지막에 목이 매어 다 부르지 못한 것이 백미였어요" 하였다. 아들아, 못 부른 마지막 소절에 딸 바보 아빠의 외침이 있었단다. 부디 화목하고 행복하게 잘 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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