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평인삼 조형물을 손보며

2013.07.03 16:31:23

신순애

탑디자인 대표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곧 나섰다. 사무실 외부 공간 정비는 내 맘처럼 쉽지 않았다. 담장을 새로 고치고 색을 입히는 일은 낯설었다. 사무실 주변 빈터엔 각종 여름 채소도 심었다. 늘 남의 손을 빌어 하던 일을 직접 하려니 우선 몸이 고단했다. 하지만 색을 칠하는 정도는 할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날 테스트 해봤다. 담장은 4시간30분 걸리고 테크는 그다음날 칠했는데 3시간 정도 걸렸다. 처음으로 색을 칠해본 거라 그런지는 몰라도 무어라 말할 수 없이 행복하고 감사했다.

내 직업은 디자이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산업디자이너다. 직업이다 보니 남의 담장에 놓인 유리조각 하나하나에도 관심을 갖고 하찮게 보이는 간판에도 평가하곤 한다. 하물며 내가 직접 디자인하거나 설치한 작품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몇 달 전 증평에 간 적이 있다. 그런데 깜짝 놀랐다. 증평 사거리에 설치된 증평인삼을 상징하는 조형물의 색이 검은 색으로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증평군청을 방문, 사연을 들어봤다. 사연인즉, 증평인삼 상징물이 변해 덧칠 작업을 했다는 내용이다. 사실 증평인삼 조형물은 몇 년 전 내가 공모를 통해 설치한 작품이다. 내 작품이 저렇게 검게 덧칠돼 있는 것을 도저히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다. 남의 물건도 낡거나 손상되면 지적을 하는 성격인데 참을 수가 없었다. 채색 작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산뜻하게 잘한다고 했는데 영 내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틀 뒤 스카이를 다시 불렀고 선생님도 다시 모셔, 더욱더 싱싱해 보이는 인삼으로 음양을 주고 다듬었다. 더운데 힘은 들었지만 산뜻하게 작업을 마쳤다.

무엇보다 내 기분이 좋았다. 내 작품에 대한 소중함에서 출발한 작은 행동이었지만 만족스러웠다. 즐거운 마음으로 돌아오면서 직업정신에 대해 생각해 봤다. 정말 프로다운 직업정신은 뭘까. 쉽게 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청주에 거의 다 왔을 즈음 머리를 스쳐가는 한 단어가 있었다. '장인정신'이었다. 장인정신이야말로 정말 프로다운 직업정신 같았다.

장인정신은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전념하거나 한 가지 기술을 전공, 그 일에 정통하려고 하는 철저한 직업 정신을 말한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일정한 직업에 전념하거나 한 가지 기술을 습득해 그 일에 정통한 사람을 '장이'라고 불렀다. 우리 민족의 정신 속에 내면화되어 있는 철저한 장인 정신과 직업윤리의 한 표현이다. 순수한 우리말로 전문가를 뜻한다.

내 직업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나는 과연 장인정신을 갖고 일을 하고 있는가. 흔히 디자인엔 정답이 없다고 한다.

감성적인 면도 많다. 그래서 수학 문제처럼 풀 수가 없다. 다만 실용성이나 심미성은 물론 여러 가지를 다 고려해서 최고의 작품을 만들려 노력할 뿐이다.

그러나 늘 한계에 봉착하곤 한다. 한정된 예산이나 시간문제, 다양한 이용자의 선호 문제 등을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 조형물의 경우 내가 내 돈으로 하는 게 아니다. 내가 보고 느끼기에 좋아서 되는 것도 아니다. 일반 다수가 보고 좋게 느껴야 좋은 작품이다. 그러다 보니 부득이 최적의 디자인이 선택되지 않을 수도 있다.

왜 저런 디자인을 했을까 하는 의구심을 사기도 한다. 지자체에서 요구하는 대부분 작품의 경우 사회적 수요를 가장 중시한다.

그 수요를 충족시켜야 가장 성공적인 작품이다. 증평인삼 조형물을 채색작업을 다시 하면서 많은 생각을 해 봤다. 검게 덧칠한 인삼조형물에 대해 증평군민이나 일반 다수가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리고 내가 그냥 지나쳤다면 어땠을까.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나는 대가를 받고 일을 해준다. 그리고 받는 만큼 생산해 내야 한다. 그래서 일반 다수의 공감이 없는 디자인은 안 된다. 앞으로 더 일반 아마추어들의 신뢰를 얻으려 노력해야겠다. 그 게 최소한의 장인정신을 실천하는 길인 것 같다. 오늘은 정말 보람된 하루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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