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농민운동가 죽음이 남긴 메시지

2013.07.23 17:02:40

장맛비가 하루걸러 온다.

잦은 비로 병충해가 극성을 부려 논밭이 썩어간다.

일조량이 부족하니 벼이삭이 패지 않거나 콩, 깨 따위는 제대로 여물지 걱정이다.

희망보이지 않는 세상 등져

올해는 음성지역에서 출하되는 미백 복숭아를 맛보기 어려울 것이란 소식이다.

올 초 닥친 이상저온으로 복숭아 재배 농가 절반 가까이 냉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지난 3~5월 이상저온 현상으로 도내 10개 시·군 복숭아 재배 491개 농가, 950㏊가 냉해를 입었다. 충북도의 자체 조사결과다.

음성지역의 복숭아 냉해 면적은 410㏊에 달한다. 이 지역 전체 재배면적 중 절반이 냉해를 입은 셈이다.

내달부터 본격 출하를 앞두고 있지만 생산량이 급감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비탄에 빠진 농촌에 비보(悲報)가 날아왔다. 한 농민운동가의 죽음이다.

그는 긴 터널의 끝을 보지 못하고 농자재 창고 기둥에 목을 매 세상을 등졌다고 한다.

음성지역 대표적 농민 운동가이자 진보 정치인, 교육 활동가이자 귀농인 이었던 남용식(50) 통합진보당 음성지역위원장의 얘기다.

고인이 된 그는 지난 2002년 경남 합천에서 음성군 음성읍 소여리로 이사했다. 고추, 감자, 벼 등의 농업에 종사했다. 평소 유기농 농산물에 대한 관심이 많아 모든 작물을 농약을 하지 않고 농사지었다.

지난 2003년 민주노동당 음성지역위원장을 맡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등 왕성한 사회 활동을 펼쳐왔다.

지역순환사회 사무국장,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 음성 등대장, 교육동아리 그루터기 감사 등을 역임했다.

전국 최초로 음성에서 시행된 '농산물 가격 안정기금 조례'제정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로컬푸드 사업에 참여해 초·중·고 학교급식에 친환경 쌀을 공급하는 성과도 이끌어 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농민과 노동자, 서민이 있는 자리에 항상 그가 있었다. 평생을 살기 좋은 농촌건설을 위해 애써 온 농민 운동가였다.

지난 20일 장례식을 치른 남씨의 제2의 고향인 음성의 농민단체 회원과 농민들은 그를 떠나보낸 충격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그의 SNS에는 애도의 글이 잇따른다. 주변인들은 그가 최근 사회·경제·정치적으로 희망이 보이지 않아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전한다. 그의 죽음은 지역 농민들에게 심한 절망감과 소외감에 몰아넣기 충분했다. 그의 자리는 컸다.

사실 정부는 그동안 농업에 대한 뚜렷한 철학과 이념을 제시하지 못했다.

지난 1993년 12월, 한국은 우루과이 라운드 타결과정에서 힘겹게 개도국의 지위를 인정받았다. 김영삼 정권은 세계화 구호를 연창하기 시작하더니 1996년 12월 경제선진국의 모임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했다. 뒷날 농업시장을 활짝 열어야 하는 불씨가 됐다.

노무현 정부는 농업시장 개방에 따른 피해를 재정지원으로 보상하겠다고 말했다. 그것을 뒤집어 말하면 농업을 지킬 의지가 없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이후 이명박 정부도 농업시장 개방에 따른 대처 정책이 과거 정권과 다른 게 없었다. 결국 자생력을 갖추지 못한 농민들은 설 땅을 잃었다.

'행복농업' 실현 힘 쏟아야

농민들이 박근혜 정부에 거는 기대가 큰 이유다.

당초 박근혜 후보 캠프측은 농림수산식품분야 예산을 국가예산 증가율보다 더 증액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해 농민들에게 기대를 주었다. 하지만 최근 '박근혜 정부 국정과제 이행을 위한 재정지원 실천계획'을 통해 농림분야에서 5년 동안 총 5조2천억원의 세출을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예산 축소로 당초 농민과의 약속을 제대로 지킬 지 의구심이 든다.

지금 농촌경제는 정부의 일방적인 FTA 추진과 농산물 수입 확대, 생산비 폭등, 농업재해로 시름하고 있다. 고령화 공동화로 농촌사회는 붕괴되고 있다.

'행복농업'을 실현하기 위해선 정부와 지자체가 농가소득 증대, 농촌복지 확대, 농업경쟁력 확보라는 정책목표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지금 농촌이 왜 통곡하고 있는지부터 살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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