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크 난 전력수급, 뿔난 민심

2013.08.20 16:48:07

얼마 전이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국민들께 전력수급 위기관련 감사의 뜻을 전했다. 주요 내용은 이렇다.

"지난 월요일(12일)부터 사상 최악의 전력난이 찾아왔지만, 가정, 상가, 기업, 공공기관 등 온 국민의 합심된 노력으로 무사히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유례없이 혹독한 폭염 속에서도 꿋꿋이 절전에 동참해 주신 자랑스러운 국민 여러분들께 다시 한번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분통이 울컥 치민다

윤 장관의 말대로 전력대란 발생까지 우려됐던 '말복 폭염'을 아슬아슬하게 견뎌내 천만다행이다.

정부가 발 빠르게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하는 등 비장한 각오로 대처한 것은 평가받을 만하다. 무엇보다 국민과 산업계의 적극적인 동참이 없었더라면 전력 비상사태를 극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충북도 동참했다. 도내 지자체와 기업체들의 에너지 절감 동참이 전력 위기 극복의 성과로 이어졌다. 산업통상부가 발표한 지자체별 7월 중 전력 사용량 현황을 보면 비상사태 극복 의지를 가늠할 수 있다. 이 기간 중 도내 시·군의 전력 사용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창문 에어캡 부착, 쿨매트, 휘들옷 입기 등 아이디어로 무더위 극복과 에너지 절약에 동참한데 따른 결과다.

이번 사태를 슬기롭게 이겨냈지만 분통이 울컥 치민다. 경제대국을 자처하는 대한민국이 전력 하나 잡지 못해 망신살이 뻗쳤으니 참담하다. 에너지원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채 원전 효율성에만 집착한 끔찍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정부의 전력 수급 실패로 국민 모두가 폭염 속에서 큰 고통을 겪어야 했다. 충북을 비롯한 전국의 2만여 곳 관공서 공무원들도 폭염과의 전쟁을 치렀다. 지난 12~14일 냉방 가동이 전면 중단되는 바람에 섭씨 33~35도를 넘나드는 실내에서 땀을 흘렸다.

산업계의 고통은 더욱 컸다. 조업시간을 줄이거나 옮기는 등 생산 차질을 감수하면서까지 절전 노력에 힘을 쏟았다. 전력대란을 막기 위해 마른 수건을 다시 짜는 각오로 임했다. 이를 통해 예상 밖의 선전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당초 피크시간대 최저 예비력이 160만 ㎾에 불과할 것으로 보였으나 절전 효과에 힘입어 400만 ㎾대를 유지한 것이다. 우려됐던 올여름 첫 '주의'경보 사이렌도 울리지 않았다.

올여름 전력 부족에 따른 블랙아웃(blackout·대정전)을 막기 위해 국민 돈 1천억원 이상이 들어갔다는 통계다. 1천억원은 직접 손실금인데 여기에다 기업들에 강제 절전을 요구하면서 발생한 간접 생산손실액(추산)은 수천억원에서 많게는 조(兆) 단위에 이를 것으로 기업들은 추산하고 있다. 정부의 전력 수급 정책 실패가 우리 사회에 천문학적인 대가를 치르도록 한 것이다.

엄벌·근본 대책 필요

더 화나게 하는 것은 최악의 전력난을 불러 온 원전비리다.

검찰 원전비리수사단은 최근 원전 수출업무를 맡았던 한국전력 해외부문 부사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앞서 현대중공업 같은 대기업이 돈 로비를 벌인 사실이 드러났다. 이명박 정권 때 실세였던 '영포라인' 출신 브로커와 그에게서 돈을 받고 로비를 한 여당 고위 당직자, 국가정보원 고위 간부 출신 인사도 구속됐다. 원전 비리가 단순히 납품업체의 성적서 위조를 넘어 한수원-한전-관계-정계까지 얽힌 권력형 먹이사슬이었을 가능성이 엿보이니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원전비리에 관여한 이들은 이렇게 국민생활에 지장을 줬을 뿐 아니라 국민 안전을 볼모로 삼아 제 잇속을 챙긴 것이니 엄벌해야 한다.

사법당국은 어느 선까지 개입됐는지 밝혀내고 행여 라도 꼬리 자르기 같은 시도는 생각도 하지 말기 바란다.

위기를 수습한 뒤 정부는 사고뭉치 원전에 의존하는 전력수급 계획부터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 그것이 지긋지긋한 폭염에 고생했던 뿔난 국민들을 위한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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