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만 쫓는 지자체의 그늘

2013.10.22 14:42:43

지자체마다 성과 자랑에 한창이다.

내년 6·4지방선거를 앞두고 더욱 열을 올리고 있는 모양새다. 단체장들의 주문에 따라 진행되고 있는 치적쌓기식 홍보전을 보면 눈물겨울 정도다.

누구를 위한 것인가

첫 투자유치 쾌거, 합동평가 우수, 정부예산 초과 달성, 축제 성공개최 등이 주류를 이룬다.

모든 것을 형식화, 지표화, 계량화, 문서화해 그 결과로 판단하고 비교하는 업무 진행 방식을 '성과주의'라 한다.

성과주의가 만연되면 하지 않은 일도 문서만 잘 갖추면 '한 일'로 둔갑한다. 열심히 한 일도 문서화에 소홀하면 공식적으로는 하지 않은 일이 된다.

성과주의가 만연되면 책임을 면하는 방편으로, 필요하지 않은 일도 해야 하고, 필요한 일도 소홀하게 된다. 한마디로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것, 노력보다 성공을 중시하는 것이 성과주의의 특징이다. 이중적 모순 그 자체다.

이 성과주의가 관료주의와 결합되면 무시 못 할 폭발력을 가진다. 막스베버가 작업 능률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이상적인 조직을 관료주의 조직이라고 정의 내린 이유다.

무엇보다 지자체가 내세우고 있는 성과물은 전시 공연 축제 체육행사다.

이들 행사는 계절을 가리지 않는다. 2013오송 화장품·뷰티박람회를 비롯해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제천한방바이오박람회, 청원생명축제 등이 막을 내렸다. 소규모 지역 축제와 체육행사는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이들 축제 끝나면 줄곧 따라붙는 수식어는 '대기록'이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행사 개최에 따른 그늘도 적지 않다.

올해 규모가 가장 컸던 행사에서 이를 찾아볼 수 있다.

오송 화장품뷰티세계박람회는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목표 관람객 100만 명을 넘어 118만명이 박람회장을 찾았다. 국내외 바이어 7천여명이 방문해 6천890억원 상당의 상담실적과 함께 630억원 규모의 수출계약을 이뤄냈다. 충북도는 이 박람회를 통해 산업과 문화박람회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한다.

2013충주세계조정선수권대회도 역대 최대 규모, 최고 대회였다고 자체 평가했다.

하지만 지난 5월 오송화장품·뷰티박람회 조직위는 예매 목표를 70만장으로 잡고 도 산하 공무원 20만장, 청주시 공무원 18만장, 청원군 공무원 5만장 등 모두 43만장의 예매권을 할당했다. 충북도는 공무원 1인당 20장씩 계산해 일선 시·군에 입장권을 내려 보낼 계획이었으나 전공노 충북본부의 반대로 하지 못했다고 한다.

지자체 축제 입장권 강매 부작용은 공무원에 국한되지 않는다. 공무원들은 부서별 관련 기업·단체에 떠맡기고 그 단체는 산하단체·하청기업으로 먹이사슬처럼 내려 보낸다. 울며겨자 먹기 식으로 수백장씩 떠안은 곳에서는 인터넷 할인판매를 통해 되파는 경우도 생겼다.

급기야, 정부가 모순에 빠진 지역 행사 살피기에 나섰다.

지자체 행사와 축제 원가를 공개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공개 대상 행사는 금액 단위로 광역자치단체 1억 원, 기초자치단체 5천만원 이상이다. 내년에는 광역 5천만원, 기초단체 1천만원 이상으로 확대된다. 철저한 사후감사를 통해 무분별한 축제남발을 막아보겠다는 의도에서다. '최초' '최고'를 중시하는 것은 물질만능 시대의 속도주의, 성과주의의 산물이라는 비판이 여러 분야에서 제기되고 있다.

질적 향상이 먼저다

성과주의에 매몰되고 성과주의는 흥행주의와 대중 영합주의로, 영합주의는 한건주의로, 한건주의는 불공정과 부도덕을 몰고 오는 첩경이라는 것이 이제까지의 역사적 경험이다.

'최초' '최고'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내용과 절차, 진실, 비전 제시라는 것이다.

성과주의는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있다. 부정적 요소가 조직력을 약화시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부정적인 면을 충분히 이해하고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제는 구체적인 내용과 절차, 진실, 비전 제시 없이 치적 쌓기에만 급급한 성과주의 행사 진행방식을 탈피해야 한다. 성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앞서 공공성 확대와 질적 향상을 위한 정책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것이 건전한 지자체의 표준임을 단체장들이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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