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후손의 땅찾기 패소 의미

2013.11.12 15:21:43

과거의 성찰과 반성 없이 화해와 통합의 장밋빛 미래를 운운함은 어불성설이다.

화해와 통합에는 잘못된 과거사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용기가 긴요하다.

과거사 직시·반성의 사건

지난 5일 청주지법 민사항소1부가 친일파 민영은 후손의 '땅찾기 소송'에서 원심을 깨고 청주시 승소 판결을 내렸다.

대통령 산하 기관인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가 환수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한 친일파 민영은의 재산을 법원이 환수 대상으로 인정한 것이다.

이날 오전 청주지법 327호 법정을 나오는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두 손을 높이 치켜든 채 만세를 불렀다. 정의가 살아 있음을 보여준 판결에 따른 감동에서다.

과거사 직시와 반성 차원의 도드라진 사건들이 아닐 수 없다.

친일행위자의 재산환수는 지난 2006년 특별법 제정 이후 진행됐다. 이후 친일재산조사위는 2010년 7월 4년간의 활동을 마감했다. 그 결과, 친일파 168명의 명의로 된, 여의도의 1.5배에 달하는 2천475필지, 13㎢의 땅에 대한 국고 환수 결정을 내렸다.

대표적 친일파인 이완용은 여의도 면적의 1.9배에 달하는 1천573만㎡를, 송병준은 여의도만한 857만㎡의 토지를 각각 소유했었다.

엄청난 대부호였던 이들은 1920년대부터 토지 매각에 나서 해방 전 대부분의 부동산을 처분했다. 이런 탓인지 이완용의 재산 가운데 국가 귀속 결정이 내려진 땅은 1만928㎡, 송병준의 땅은 2천911㎡에 불과했다.

충북에서는 31명의 친일파가 소유한 201만3천537㎡의 친일재산에 대해 국가 귀속 결정이 내려졌다. 경기·충남에 이어 3번째로 큰 규모였다.

그럼에도 자작 작위를 받은 민영휘 소유로 알려진 청주 상당산성 내 33필지 3만14㎡는 친일재산조사위의 심사 대상에도 오르지 않았다.

이 토지는 1948년 반민족행위처벌법이 생기며 구성된 반민특위의 판단에 따라 이듬해 9월 국가에 귀속됐다. 하지만 1970년대 말 민영휘의 후손들이 소송을 제기, 승소하면서 귀속 대상에서 빠져버렸다.

충북도청 인근의 당산 42만3천㎡ 역시 메이지신궁봉찬회 조선지부 충북도위원을 지낸 친일파 민영은의 소유다.

이 토지 역시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조사위의 국고 환수 결정이 나지 않았다.

이를 토대로 친일파 민영은 후손들은 청주시를 상대로 '도로 철거 및 인도 청구 소송'을 제기했지만 항소심에서 패소했다.

그래서 이번 청주지법 판결은 의미가 자못 크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가 국고 환수 대상에서 제외한 토지라 하더라도 친일 대가로 취득한 재산이라면 환수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알토란같은 시민의 땅을 지켜낸 청주시의 노력이 값지다. 친일파 민영은 후손의 토지 소송에 대한 시민대책위원회의 활동도 그렇다.

무엇보다 '땅찾기 소송'의 부당함을 알리며 소송 반대운동에 앞장 서 온 민영은의 외손자인 권호정씨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친일재산 환수 더 힘써야

법원이 친일재산 조사위 결정을 사실상 뒤집은 첫 판결이라는 점에서 향후 유사한 재판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산하 한시 기구로 활동을 종료한 조사위의 뒤를 이를 상설 기구 설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상설 기구가 한 걸음 더 나아가 조사위가 귀속시키지 못한 친일재산을 더욱 면밀히 조사해 추가 환수 작업에 나섰으면 한다. 친일재산 국고환수를 위한 정부의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친일파 후손들의 용기 있는 결단도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어두운 과거를 묻어둔 채 현실에 안주하면 더 큰 아픔과 비극을 부르기 마련이다. 화해와 통합을 위한 이해와 열린 자세가 절실하다.

이제는 말만의 청산이 아닌, 실천하는 청산이 이뤄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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