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정치권의 '영충호 신드롬'

2013.11.19 16:22:46

충청권 정가에서 '영충호' 바람이 거세다. 내년 6·4지방선거를 앞두고 신드롬에 가깝다.

'영충호'는 이시종 충북지사가 선창했다. 영충호 시대는 영남·충청·호남시대를 줄인 것이다. 이 지사가 지난 8월부터 공개 석상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를 움직이는 동력의 크기가 종전 영남-호남-충청에서 이제 영남-충청-호남으로 바뀌었다는 점을 강조하는 신조어다.

그들만의 치적 경계해야

건국 이래 최초로 충청권 유권자 수가 호남권 유권자수를 추월하면서다.

이 지사는 지난 직원월례회석상에서 '영충호 시대'도래에 적극적인 준비를 주문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새해를 명실상부한 '영충호 시대'의 원년이 되도록 도정을 운영하겠다고 밝힌다.

정치권에서도 가세했다. 변화에 맞는 국회의원 정수 조정 논의와 요구가 봇물을 이룬다.

정우택 새누리당 최고위원(청주 상당)은 최근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충청 출신 여당 의원 28명의 대표 자격으로다. 헌법소원 청구 핵심은 충청권 인구가 호남권보다 많은데 국회의석수는 오히려 적은 것은 헌법상 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에 귀결된다.

의석수의 이 같은 불공정 배분은 두 가지 요인에 기인한다. 국회의원 선거구 간의 인구편차를 과도하게 넓게 인정한 것과 국회가 재량의 범위를 넘어 선거구를 획정했기 때문이다. 현재 적용되고 있는 선거구 간 인구편차는 3대 1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이로 인해 인구가 가장 많은 선거구와 가장 적은 선거구의 투표가치가 3배 이상 차이 나는 불평등을 초래한 것이다. 한 개인의 투표가치가 다른 사람의 3분의 1에 불과하다면 마땅히 투표가치의 평등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지난 19대 총선에서 충청지역의 선거구당 평균인구는 20만7천명으로 영남의 19만7천명, 호남의 17만500명에 비해 지역대표성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정 의원의 이번 헌법소원은 이런 불평등을 용인하지 않고 선거의 평등을 엄격히 요구한 것으로 당연한 처사라 할 수 있다.

과도한 인구편차 허용은 결국 정치권의 영·호남 대결구도를 고착화하는 근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시정돼야 한다. 농어촌 지역구의 폭넓은 인구편차 허용은 주로 영·호남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이는 곧 특정지역에 기반을 둔 정당의 과도한 영향력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주는 꼴이 되고 말았다. 또 세계적으로도 선거구 인구편차를 엄격히 제한하는 추세다. 영국은 선거구 평균 유권자수와 가능한 한 근접하게 선거구를 획정하며, 미국은 지난 1983년 선거구간 0.7%의 인구편차를 위헌으로 판결했다. 독일은 1.3대 1. 프랑스 1.5대 1, 일본 2대 1 수준이다.

사실 역대 선거에서 충청권은 캐스팅보트 역할만을 해왔을 뿐이다.

승패를 결정짓는 주요 변수로는 꼽히지만, 영남과 호남, 수도권과 달리 독자적 영향력은 제한돼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영충호시대는 곧 충청권 역할론의 변신을 의미한다. 충청권 대망론으로도 연결될 수 있다.

이제는 고삐를 더 단단히 잡아야 할 때다.

사실 충청권 선거구 증설 문제를 놓고 보면 말은 활발하지만 모아진 의견이 없다. 여야 정치권이 더욱 그렇다. 의견일치가 아닌 중구난방만이 있는 느낌이다.

설령 충청권의 절체절명의 과제라 해보자. 가만히 있는데 영남이나 호남에서 알아서 해줄 리 만무하다. 충청권 스스로 투표가치의 불평등성, 인구수를 고려한 합리적인 표의 등가성을 찾아야 한다. 관·정 또는 민·관·정이 논의를 함께하는 협의체가 절실하다.

누가 제안했느냐보다 지역민과 정치권이 머리를 맞댄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지방선거를 앞둔 선제적인 공 다툼, 당리당략에 치우친 정쟁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지역 공동 이익이 걸린 주요 현안을 해결하자는 초심을 회복한다면 어려운 일도 아니다.

민·관·정 협력이 먼저다

현재의 선거구 획정 이슈에 대한 전국적인 공감도는 미약하다. 지역 정치권끼리 입장차만 부각하다 선거구 증설이 표류할 개연성이 없지 않다. 호남권보다 인구가 많고 의석수가 적으니 조정하자는 논리 하나만 믿고 정파적 이익에 몰두할 때는 그럴 수 있다. 여야 중앙당 차원으로 확대된 지원과 협조가 전제돼야 하기에 더 어렵다.

인구 비례에 맞춰 의석수를 다시 정하는 일은 정당뿐 아니라 지역 간 이익이 걸린 중대사다. 공식화된 논의의 장에서 불리한 정치력의 한계를 극복하려면 정치권과 행정기관, 시민사회가 보조를 맞춰야 한다. 충청권 여야의 적극적인 협력의 틀이 먼저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옛 속담의 의미를 되새겨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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