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부르는 '꽃밭에서'

2014.02.19 13:28:53

김형식

행정초등학교 교감·아동문학가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

아빠가 매어 놓은 새끼줄 따라 나팔꽃도 어울리게 피었습니다.

애들하고 재밌게 뛰어 놀다가 아빠 생각나서 꽃을 봅니다.

아빠는 꽃 보며 살자 그랬죠. 꽃같이 예쁘게 살자 그랬죠 ♪

철에 맞지 않지만, 오늘은 '꽃밭에서'를 나지막이 불러보고 싶습니다.

'꽃밭에서'는 1952년 월간잡지 '소년세계' 9월호에 게재되었던 어효선 선생님의 시입니다. 1952년은 한국전쟁이 한창일 때로 아버지들이 전쟁터로 나가 전사하거나 행방불명되어 돌아오지 않는 가슴 아픈 일이 많았던 때입니다. 이 시도 꽃밭을 만들어 주시던 아버지가 전쟁터로 나가 꽃이 한창 피어도 돌아오시지 않자 꽃을 보며 아버지를 그리는 애절함이 담겨 있습니다.

권길상 선생님이 부산 피난시절인 1952년, 가족이 있는 대구에 갔다가 우연히 '소년세계'란 잡지에서 '꽃밭에서'를 읽고 곡을 붙여 지금까지 우리가 부르는 노래로 탄생시켰답니다. '섬집 아기', '과꽃' 등과 함께 우리나라 사람들의 애창 동요로 불리고 있지만 안타까운 것은 이런 노래들이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점점 사라져 간다는 점입니다. 권길상 선생님도 자신의 동요가 교과서에서 하나둘씩 빠지고 있다는 말로 세월의 변화를 이야기하면서 아이들은 아이답게 가요보다는 아이들다운 노래를 배워서 불렀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한 사람으로서도 그 아름다운 동요들이 잊혀가는 걸 생각하면 씁쓸하기만 합니다.

이 노래를 모티브로 이상교 작가가 만든 그림책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를 읽으면 잘 여문 꽃씨를 받으며 아버지를 기다리는 아이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갑작스레 터진 한국전쟁으로 이유도 모른 채 아버지와 헤어져 평생을 못 만나고 살아온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노래 속에 그대로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전쟁의 아픔을 고스란히 느끼게 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헤어짐의 고통이 얼마나 큰 지는 이 그림책을 함께 읽으면서 알려줄 수 있을 것입니다. 전쟁이 아니더라도 가족과 헤어진 가슴 아픈 일이 우리들 주위엔 많습니다. 어느 것의 경중을 가릴 것은 없지만 애타게 서로 만나볼 날을 기다리는 이산가족들을 생각하면 더욱 가슴이 아픕니다.

오늘부터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집니다. 얼마만의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와 꽃밭을 만들던 아들이 있을 테고, 꽃밭을 만들어 주던 아버지도 있을 것입니다. 그 오랜 세월 기다리다 지친 가족들이 얼굴 한번 보기가 소원인데 그 소원 들어주는 것이 이리 힘들 수가 없습니다. 다른 이의 고통을 담보로 무언가를 얻으려 하는 슬픈 현실입니다.

60여년을 헤어져 살아온 슬픔의 무게를 얼마나 덜어내고 올 수 있을까· 돌덩이처럼 얹혀 있는 그리움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가볍게 하고 돌아올 수 있길 바랍니다.

나도 하늘나라에 계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다시 한 번 흥얼거려 봅니다.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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