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워야할 귀여운 선거전

2014.03.19 14:19:16

김형식

행정초등학교 교감·아동문학가

출근길 눈에 띄는 것은 한 뼘 자란 마늘 싹이 줄을 맞추어 올라와 있는 모습이다. 일정한 크기로 자라 야무지고 반듯하게 나란히 줄지어 있는 모습은 그 어느 새싹보다 예쁘다.

3월이면 신입생이 입학을 하고 선생님을 따라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줄지어 다니며 학교 구경을 한다. 줄지어 다니다 반듯하게 서서 선생님을 바라보는 모습이 마늘 싹처럼 예쁘다.

호기심 가득한 신입생들의 모습이 보이는가 하면 훌쩍 자란 모습으로 한 학년씩 올라온 듬직한 상급생들이 보인다. 이 상급생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이 어린이회장 선거다. 요즘은 2월에 미리 뽑아 3월부터 활동을 하도록 하는 학교도 있지만 대부분은 3월에 집중되어 있다.

전교어린이회장 선거는 민주시민으로 자라날 학생들이 처음으로 유권자로서의 권리를 경험해보는 중요한 행사이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학생들이 선거의 중요성을 깨닫고 훌륭한 민주시민이 되기를 바라는 교육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는 학사 일정 중 하나이다.

농산촌의 작은 학교는 6학년이나 5학년이 얼마 되지 않아 포스터 한 장 달랑 붙이는 것으로 끝나지만 도시 학교는 치열한 선거전이 펼쳐진다.

연설문 만들기, 공약 만들기, 프로필 사진 찍기, 포스터 만들기 등으로 바쁘다.

포스터는 한눈에 띄게 만들어라, 전교어린이 회장 후보라는 것이 밝혀져야 한다. 선거 후보 번호와 후보의 이름이 잘 인식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나름 여러 사람의 조언을 듣기도 하고 인터넷을 뒤져 방법을 찾아보기도 하면서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알록달록한 물감으로 이름을 쓰고 기호를 쓰고 공약을 써 넣는다. 귀여운 공약을 쓴 포스터를 교내 곳곳에 붙이고 선거 운동을 시작한다. 공약은 '행복한 학교를 만들겠습니다. 깨끗한 학교를 만들겠습니다. 착한 회장이 되겠습니다' 등으로 평범한 공약이 있고 '유재석의 배려심, 싸이의 명랑함을 갖춘 회장이 되겠습니다'라는 재미있는 공약도 있고 '빨강색처럼 정열적인 학교, 주황색처럼 따뜻한 학교, 파랑색처럼 희망찬 학교를 만들겠습니다'라는 추상적인 공약도 있다.

공약을 정하면 프로필 사진을 찍어 포스터를 만들고, 선거를 도와줄 운동원 즉 선거도우미 친구도 뽑아 선거전을 펼친다. 아직 쌀쌀한 아침 날씨에도 불구하고 목이 터져라 후보 친구의 이름을 외쳐댄다. 어른들이 하는 선거운동을 본대로 흉내를 내보는 귀엽고 치열한 선거전이 펼쳐진다. 어른들이 보고 배워야 할 귀여운 선거전이다.

이 귀여운 선거전이 치열하다고 해서 다른 후보를 헐뜯거나 다른 후보의 약점을 들추어내서 자기를 부각시키려 하지 않는다. 자기 공약을 열심히 발표하고 자기가 최선을 다하겠다고 지지를 호소한다. 얼마나 귀여운가· 우리 아이들은 이렇게 배우면서 선거에 대해 공부하였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언제부터 잘못되었는지 모르겠다. 지금 전국에 불고 있는 선거 바람은 훈풍이 아니고 돌풍이다. 상대방이 잘못했단다. 상대방 공약은 다 아니란다. 상대방은 자질이 없단다.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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