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림 사이에 공간 헤게모니, 충북북부 사군산수

2014.06.17 15:38:40

조혁연 대기자

'사군산수'도 의외로 정치라는 외풍을 탔다. '사군산수'라는 표현을 처음 사용한 이안눌(李安訥·1571-1637)은 영남학파, 즉 동인 계열의 인물이다. 조선전기에는 김일손, 퇴계 이황 등 영남학파 문인들이 사군산수를 주로 방문하고 작품으로 남겼다.

그러나 우암 송시열(宋時烈·1607-1689)이 충주목사를 역임한 이후로는 호서학파, 즉 서인들이 '사군산수'의 공간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작품으로 남기게 된다.

송시열 이후 사군산수 공간에는 권상하, 김창협, 김창흡, 김윤겸, 권섭, 권신응, 김광수, 홍중선, 이병연 등의 이름이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범서인계 인물들로, 최종적으로는 노론 낙론계 인물이 사군산수의 공간 헤게모니를 장악했다.

우암은 청풍관아의 '팔영루'(八詠樓)와 수제자 권상하(權尙夏·1641-1721)가 머물고 있던 '수일암'(守一菴)의 편액을 썼다. 이것이 계기가 돼 팔영루와 수일암은 서인계 문인들의 필수 답사코스로 발전했다. 특히 경기도 지역의 서인계 문인들이 남한강 수계를 이용해 사군산수를 많이 찾았다.

이는 겸재 정선(1676-1759)이 진경산수화로서 사군산수를 많이 그리는 주요 이유가 됐다. 앞서 김창협(金昌協·1651-1708)과 김창흡(金昌翕·1653-1722)의 두 형제를 언급했다. 이들은 우암 송시열을 추종했던 범서인계 인물이다.

두 형제는 영남학파와 달리 사군산수 공간은 수양이 아닌 여흥의 공간으로 인식했고, 그런 한시를 많이 남겼다.

이들은 서울 인왕산 근처에 살고 있던 화가 정선과 인간적으로 매우 친했다. 따라서 정선은 이들의 부탁을 받고 우리고장 사군산수를 소재로 한 그림을 그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정선은 36세 때부터 74세까지 작품 활동을 하면서 총 12권의 화첩을 남겼다.

이중 3권의 화첩은 전해지지 않으나 그중 하나가 사군산수를 소재로 그렸다는 '사군첩'(四郡帖)이다. 반면 지난 2003년 정선이 사군산수를 그린 또 하나의 화첩인 '구학첩'(九壑帖)이 발견됐다.

정선 작품 '하선암도'

구학첩에는 '하선암도', '삼도담도', '봉서정도' 등 3개의 진경산수화가 들어 있다. '하선암도'의 그림 내용을 살펴보면, 반석 위에 여울을 감상하는 듯 두 사람이 않아 있고 물소리는가 시끄러운 듯 하다.

그러나 미점(米點)으로 처리된 먼산과 소나무를 통해서는 적막감이 느껴진다. 이에 대해 평론가들은 정선 친구 원경하(元景夏*1698-1761)이 지은 시를 연상케 한다고 말하고 있다. 다음은 원경하의 한시다.

'여울 소릴 돌 부딛는 소리 평정하기 어려우니 / 종일토록 산중에 콸콸 울리는 소리라네 / 다만 흰 구름 있어 그 하나 좋아할 만한 데 / 높고 푸른 소나무만 소리없이 고요하네.'

'삼도담도'는 중봉을 강조하고 양옆의 돌은 고개를 돌려 중봉을 바라보는 모습으로, 삼봉을 의인화했다. 그리고 중봉 앞에 배를 배치해 스치 듯 지나가며 관람하는 구도를 연출하고 있다.

이밖에 '봉서정도'는 필선이 매우 부르럽고 섬세한 것이 특징이다. 단양군이 이 그림을 바탕으로 봉루정 복원을 추진하겠다는 발표를 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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