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달팽이

2014.07.07 14:33:52

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대학생이 된 큰 애가 학교에 가기 전, 수조 속 구피들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다. 큰 수조(水槽)에는 한들거리는 물풀들, 가끔씩 머리를 들어 물을 토해내는 공룡모양의 장식, 입을 벌릴 때마다 뽀글뽀글 물을 뿜어 올리는 무지개 빛깔의 커다란 조개가 눈길을 끌었다. 앙증맞은 열대어들은 그 사이를 유유히 헤엄쳐 다닌다. 한가운데 그럴 듯한 유럽풍 성곽까지 들어앉힌 파르스름한 수조는 제법 환하고 아름다워서 큰애는 한참씩 물 속 세계에 몰아지경으로 빠져 있곤 했다. 걸음마시절부터 이제는 스무 살, 어른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한결 같이 곤충이며 작은 뭇 생명체에 빠져 지내는 것이 슬몃 웃음이 나기도 한다.

수조를 넋 잃은 듯 바라보던 큰 애는 한동안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했다. 초등학교 때 또래의 아이들이 한창 컴퓨터 게임에 빠져 있을 무렵 아이의 관심은 오로지 곤충이나 물고기 등에 쏠려 있었다. 아이의 곤충에 대한 애정은 좀 유별나서 어느 때부터인가 집안은 온갖 곤충들의 전시장이 되어 버렸다. 나무에서 떼어낸 사마귀 알집, 앞산의 썩은 나무를 파헤쳐 잡아온 넓적 사슴벌레의 애벌레, 재래시장에서 얻어 온 새우, 미꾸라지, 가재 등….

"아빠! 물 달팽이가 새끼 낳았어. 빨리 와봐"

어느 날 아이의 호들갑에도 내가 하던 일에서 손을 떼지 않자 급기야 내 손을 잡아 이끌어 수조 앞에 앉혔다. 하지만 아무리 아이가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여도 무엇이 물 달팽이 새끼라는 것인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참을 뚫어져라 바라본 끝에 정말 먼지보다도 작은, 유리에 살짝 묻은 흰 점 같은 것이 보였다. 너무 티끌 같아서 여하한 움직임도 감지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아 내 육안으로 확인한 것 중 가장 작은 생명체였다. 그런데 그것이 물 달팽이 새끼라는 것이다. 아이는 신나고 들떠서 어쩔 줄 몰랐다.

그로부터 며칠 후 학원에서 돌아와 수조 앞에 앉아 있던 아이가 갑자기 통곡에 가까운 울음을 터뜨렸다. 청소부 물고기가 물 달팽이 새끼를 먹어 치웠다는 것이다. 평소에는 수조 뒤쪽의 물풀 사이에 몸을 숨기고 잠적하듯 가라앉아 있다가 가끔 수조 안을 한 바퀴 시찰하러 나오곤 하는 청소부 물고기가 그 큰 입으로 유리벽을 한번 '슥' 핥았는데, 그 바람에 새끼 달팽이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거였다. 아이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저녁 입맛을 잃을 정도로 서러워했다. 그 희미하고 가물거리는 하나의 목숨에 주목했던 아이의 마음, 불과 며칠 동안이었지만 그 작은 새끼 달팽이와는 어떤 교감을 나누었으며, 도대체 그 미약한 존재감에 아이가 열광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궁금했다.

티끌 같은 모습의 생명이라 해도 엄연히 우주의 기운을 받아 만들어진 하나의 화육(化肉)일진대 어찌 제 스스로의 빛을 드러내지 않겠는가. 다만 그 빛은 아직 무구한 시선을 가진 자에게만 자신을 드러내는 법인 모양이다. 우주의 간절한 기운으로 맺어진 한 점 정혈과도 같은 생명이기에 또 다른 생명인 아이와 교감했을 것이다.

"너, 물 달팽이 없어졌다고 울고불고 한 생각나니?"

수조에서 시선을 거두고 대학기말시험을 위해 문을 나서던 큰 애가 아련한 듯 말한다.

"지금도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이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

<저작권자 충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관련기사

PC버전으로 보기

충북일보 / 등록번호 : 충북 아00291 / 등록일 : 2023년 3월 20일 발행인 : (주)충북일보 연경환 / 편집인 : 함우석 / 발행일 : 2003년2월 21일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무심서로 715 전화 : 043-277-2114 팩스 : 043-277-0307
ⓒ충북일보(www.inews365.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by inews365.com, I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