냇물을 건네주던 아이들

2014.07.09 13:26:19

김형식

행정초등학교 교감·아동문학가

예전엔 소풍을 가도 인근 3~4km를 걸어서 갔다. 아이들은 먼 길을 걸어가면서도 멀다고 징징거리지 않고 그저 즐거워 신이 났었다.

6학년 아이들을 데리고 노래를 부르며 소풍 길에 나섰다. 학교에서 소풍지까지 가려면 깊지는 않지만 넓은 냇물을 건너야 했다. 지금은 물길이 바뀌어 우리가 건너던 곳과는 사뭇 다르다. 놀러갈 만한 곳도 못되는 것 같다.

돌무더기에 앉아 양말을 벗고 있는데 한 녀석이 넓은 등을 들이댄다.

"업혀유"

"에이. 무거워서 네가 못 업어"

"괜찮아요. 업을 수 있어요"

"안 돼. 건너다 중간에 넘어지면 둘 다 생쥐 되려고?"

그렇게 업히라니 안 된다니 하는 새에 남자 아이들이 내게 달려들어 경근이 등에다 얹어버렸고 경근이는 너끈하게 나를 업고 일어섰다. 그리고 가뿐가뿐 내를 건너 건너편 모래밭에 내려놓았다. 별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거리는 경근이 등에 업혀 얼결에 건넜다.

"이따가는 선생님이 경근이를 업고 건너갈게"

"헤헤. 못 업어요. 제가 얼마나 무거운데요. 선생님은 가볍던데요"

돌아올 때는 얼른 냇물로 들어가 발을 적시고 경근이를 찾았지만 벌써 건너편에서 웃고 있었다. 달리기를 잘해서 육상 선수였던 경근이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아이가 선생님이 물에 빠지지 않게 등을 들이댈 수 있는 것은 몸에 배어서 나오는 행동이다. 가정에서나 학교에서 어른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워서 선생님이 물에 빠지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이 민망해서였을 것이다. 평소 말도 잘 안하던 아이가 등을 들이댈 때는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을까 싶다.

요즘, 아이는 물에 빠지고, 교사는 아이 등에 업혀 물에 빠지지 않고 건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앞뒤 뚝 자르고 교사가 아이 등에 업힌 그림만 보고 온 나라가 난리가 났을 것이다.

사이버 공간에 보이는 것은 순간 정지된 그림이지만 그 속에는 많은 사연이 담겨 있다. 그런데 그걸 보는 사람은 그 속은 보려고 하지 않고 자기 판단으로 보고 이야기 한다. 보는 마음과 눈의 차이가 무지하게 크지만 다들 자기 잣대로만 보려는 세상이다. 좋은 생각을 가지고 보는 사람은 아이를 보고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을까 기특하게 볼 것이다. 하지만 남이 하는 일을 무조건 비난하는 사람은 아이 등에 업힌 교사에게 초점을 맞추어 어떻게 저럴 수 있냐고 비난을 퍼부을 것이다. 아이를 업어 건네주어야지 어떻게 자기가 업히느냐고….

아이들은 밝고 맑은 심성을 가지고 있다. 남을 배려할 줄도 알고 자기의 잘못을 뉘우칠 줄도 안다. 하지만 보이는 학교 밖 세상은 내 잘못은 모르는 사람들이 남의 잘못은 어찌 그리 잘 보는지 그걸 꼬투리 잡아 남의 탓을 하고 싸우는 일이 흔하다. 바라보는 우리 아이들의 눈과 귀를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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