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정의 이름이 왜 '醉默堂'(취묵당)일까

2014.07.15 15:01:49

조혁연대기자

누정의 본래 기능은 취경(取景), 즉 경치를 모으는데 있다. 때문에 전통 누정은 방이 없는 대신 마루만 있고, 사방이 두루 보이 듯이 탁 트였다.

누정에는 주인의 의도에 따라 누(樓)·정(亭)·당(堂)·대(臺)·각(閣)·헌(軒) 등의 이름이 붙으나 그 구분은 뚜렷하지 않다.

누정의 명칭은 자연, 동식물, 사람 호칭, 역사적인 사건 등과 관련된 것이 많다. 우리고장을 위주로 예를 들면, 영동군 양산면 봉곡리의 금호루(錦湖樓)는 금강변에 위치하고 있어서 지어진 이름이다.

동물과 관련된 누정 명칭으로는 영동군 심천면 금정리의 관어대(觀魚臺)가 있다. 조선 중기의 인물인 민욱(閔昱·1559-1625)은 이곳에서 물고기가 노니는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뜻에서 '관어대'로 이름지었다.

영동군 황간면 남성리의 가학루(駕鶴樓)는 누각이 학의 날개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구전되고 있다. 추풍령 정상에서 승용차를 타고 북쪽으로 달리다 보면 언덕 위의 전통건물을 처음으로 만나는 것이 있는데, 바로 가학루다.

사람 호칭과 관련된 누정으로는 애한정(愛閑亭)과 백석정(白石亭)이 있다. 괴산읍 검승리에 위치하고 있는 애한정은 조선 현종 때 괴산군수였던 황세구(黃世耉)가 박지겸의 손자 박정의(朴廷儀)의 효심에 감동하여 자신의 사비를 털어 중건했다. 바로 박지겸의 호가 애한정이다.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관정리에 위치하고 있는 백석정은 조선 숙종 때의 신교(申삼수변+覺)라는 인물이 바위 위에 세운 누정이다. 바로 신교의 호가 백석정이다.

백석정은 사람 호칭 외에 자연과도 관련이 있는 누정이다. 백석정이 위치하고 있는 물가 바위는 유난히 흰 색깔을 나타내고 있다.

누정 편액에 '醉默堂'(취묵당)이 보인다.

그러나 백곡 김득신이 괴산읍 능촌리 괴강가의 취묵당 누정은 이같은 사례가 잘 적용되지 않고 있다. 취묵당은 한자 '술취할 醉', '침묵할 默', '집 堂' 자로 구성돼 있다.

직역하면 '술에 취해 있었도 침묵한다' 정도가 된다. 흔히 여성들이 수다를 많이 떤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남성들의 상당수도 술에 취하면 말이 많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취묵'은 그 반대되는 것으로, 항상 조심스런 행동을 다짐하는 표현이다. 김득신은 자신이 글 '취묵당기'를 이렇게 썼다.

'세상 사람들은 술에 취했어도 침묵하지 않고 깨어 있어도 침묵하지 않는다. 이렇듯 말로 인해서 재앙을 만나지 않도록 경계할 줄 모르니, 어찌 걱정스럽지 않겠는가. 취해 있어도 입을 다물고 깨어 있어도 입을 다물며, 평소 마치 병의 마개를 닫듯이 하면 반드시 재앙의 조짐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취해 있어도 침묵하지 않고 깨어나서도 침묵하지 않는다면 몸을 산야에 둔다고 하더라도 도성 안에 거쳐하면서 말을 조심하지 않는 사람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취묵당기>

그러나 남겨진 시만 보면 그는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었다. '用進退格'(용진퇴격)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읊었다.

'봄이 와도 내 심사 안타까운 건 / 꽃 핀 달밤에 친구도 술도 없음이라 / 만약 친구와 술이 있게 되면 / 아마도 그땐 꽃도 달도 없겠지.'-<백곡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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